학기 랜덤뽑기 초에 학생들에게 구글 설문지로 자기 소개 자료를 받았습니다.거기에 올 한 해 학급 친구들과 해보고 싶은 활동을 적어달라고 했는데,거기서 유독 학급 생일 파티를 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어요.그리고 학급 반장 선거 때 학급 생일파티를 하겠다고 공약을 건 학생도 있었습니다.사실 매달 선물 고르고, 바빠 죽겠는 시기에 생일 파티 준비까지 하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닌데요 ㅠㅠ.....이래저래 몸이 힘든 일인데 학생들이 이렇게 원하니 일단 ㅇㅋ 했습니다.학급 생일 파티 준비 - 학생들에게 맡기기저의 올해 목표는 '학급 활동은 학급 임원들에게 맡긴다.'인데요. 더 이상 늦은 저녁까지 혼자 교무실에서 나혼자 뭐할지 골머리 썩고 싶진 않아서요 랜덤뽑기 ㅠㅠ학급 생일 파티는, 학급 생일 파티를 공약으로 건 학생에게 부탁했습니다.근데 사실, 공약을 내건 학생......학급 반장, 부반장으로 당선되지 못했어요.낙선한 것도 서러운데 공약까지 시켜도 되려나? 싶었는데제가 학생에게 말했습니다.'너가 이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내건 공약이니까,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너가 말한 공약을 지켜내는 걸 쌤은 보고 싶어.네가 말한 공약을 직접 책임지고 진행해보고, 네가 느끼는 게 있다면 다음에 반장으로 나가게 될 일이 있을 때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이렇게 얘기하니 학생도 흔쾌히 학급 생일 파티, 자기가 맡겠다고 해주었어요 ^_^그래서! 제가 이런 기획안을 주고 어떻게 진행할 건지, 제대로 각잡고 기획안을 써보라고 했습니다.'추가의견'란에는 랜덤뽑기 학급 반장, 부반장의 의견도 받아와보라고 했구요.그랬더니 이렇게 자기 의견을 많이 써 왔습니다 ㅎㅎ마지막은 학생과 같이 기획안을 보면서 빨간펜으로 최종 방향을 다듬었어요.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된 게 '선물 주기'와 '사물함 꾸미기'였습니다.학급 생일 파티 활동 1 - 랜덤 선물 뽑기코로나 시절에 학급비가 넘쳐날 때 멋모르고1인당 5000원 이하로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월말에 쌤이 사올게!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월말마다 피곤한 몸뚱이를 이끌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물건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옆반 쌤은 어떻게 하나 본 적이 있는데그 선생님은 '쓸모 없는 물건들 왕창 사서 랜덤뽑기해요 그냥 ㅎㅎ'하시더라구요.와......나도 저렇게 편하게 랜덤뽑기 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작년부터는 그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이렇게 진행합니다.준비 1 - 학생들에게 받고 싶은 선물 고르라고 하기전 제가 뭐사야 하는지 머리 쥐어짜는 게 너무 힘들어서 전부 아이들에게 떠넘겼습니다 ㅎㅎ학생들에게 이런 설문을 뿌리고,'너희들이 갖고 싶은 걸 적는 게 아니라 친구에게 주고 싶은 걸 적는 거야.랜덤 뽑기 할 거라 그 선물을 누가 받게 될 지는 몰라'라고 말해줬습니다.그랬더니 아이들이 보낸 선물들이......하하;;;;;개껌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침 조례 시간에 설문 결과를 보여주며'얘들아 강아지 생일이 아니라 사람 생일이야....!!!'라고 했지만아이들은 개껌 꼭 사야 한다고 그래서......결국 샀습니다.준비 2- 랜덤 뽑기 룰렛 만들기그 다음 아래와 같이 랜덤뽑기 룰렛을 만들었어요.아이패드에 있는 룰렛 앱인데 여기에 아이들이 고른 선물을 하나씩 입력하고월말에 생일 파티할 때마다 생일인 학생들 보고 돌리라고 했습니다.걸린 선물은 지우고 다음 달로 넘어가는 거죠.남자 아이들 돌릴 때마다 '제발 공주님 세트!!'라는 반 아이들의 외침이 엄청납니다.학급 생일 파티 활동 2 - 우주를 담은 생일 카드 사물함 꾸미기는 '생일 카드 붙여주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생일 카드 선물은 저자이신 장원석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착안했는데요.안녕하세요. 장쌤입니다. 학급에서 생일축하를 어떻게 하고 계실까요? 저는 단체로 축하는 하지 않고, 개별...요약하자면 NASA의 허블 망원경이 아이들의 생일날에 촬영한 우주의 모습을 카드로 만들어 선물해주자라는 아이디어 였습니다.Hubble Birthday위 사이트에 접속해서 자신의 랜덤뽑기 생일을 입력하면그 날 허블 망원경이 찍었던 우주의 사진을 보여주거든요!이 사진을 담은 생일 카드를 만들어 주는거죠.뭔가 뭉클한 감동이 묻어나는 선물 같아서 저도 실행해보고 싶어졌어요.단, 절대 제가 만들지 않습니다 ㅎㅎ장원석 선생님 링크를 바로 학생에게 보냈습니다 ㅎㅎ저같은 똥손보다는 요즘 학생들이 확실히 이런 건 잘하더라구요.그래서 학생이 실제로 만든 결과물이매우 고퀄의 생일 카드가 만들어졌습니다.....!학생이 직접 미리캔버스에서 적당한 양식을 찾아 만든건데딱 클린&깔끔~한 게 제 취향이었어요 ㅎㅎ만든 카드는 출력 후 코팅해서 생일인 학생 사물함에 붙여두었습니다.생일 준비하느라 수고해준 학생에게도 응원의 한 마디!앞으로 아이들은 자기 생일 때마다 우주가 담긴 카드를 받게 되고,생일이었던 달의 마지막 날에는 랜덤 랜덤뽑기 선물이 기다리고 있게 됩니다.이 정도면 제 손 많이 쓰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꾸려가는 학급 생일 파티인 거 같아 만족합니다!학급 생일 파티 에필로그 - 당신이 태어난 날의 우주제가 장원석 선생님의 아이디어를 보고 꽂히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생일과 우주에 관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화가 하나 있거든요.;으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경험담인데요.움베르토 에코움베르토 에코가 스페인을 여행할 당시, 그 도시에 있는 과학관에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그 곳에서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는 천체투영관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게 됐다는 데요.천체투영관의 모습거기서 과학관장이 에코에게 생일을 묻더래요.1932년 1월 5일이라고 말해주자, 관장이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사라졌답니다.잠시 후, 투영관에는 자장가와 같은 랜덤뽑기 음악이 흘러나오고 천장은 어느 날의 밤하늘의 모습으로 바뀌었답니다.그리고 이어지는 관장의 말에 움베르토 에코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됐답니다.당신이 태어났던 1932년 1월 5일의 밤하늘입니다.투영관의 천장에 펼쳐졌던 밤하늘이 바로 자신이 태어난 날의 밤하늘이었던 겁니다...!움베르토 에코는 이 때 느꼈던 자신의 경험을 본인의 책에도 실었는데요.저는 오늘 아침 생일 파티를 진행하면서 움베르토 에코의 일화를 학생들에게 들려주고아래의 PPT 화면을 보여주면서 책의 한 구절을 읽어줬어요.그리고 이런 말로 학급 생일 파티를 마쳤습니다.'선생님이 OO이(학급 생일 파티가 공약이었던 학생)와 함께 생일파티를 어떻게 진행할까 얘기하다가이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이런 생일 카드를 준비했습니다.앞으로 OO이와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생일 랜덤뽑기 때마다여러분들이 태어났던 날의 우주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