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유로247주소人 戰 紀[여인전기]21. 季節[계절]의 젊은이들 31 4칠팔월 노양이라니, 추석머리의 한낮 겨운 햇볕이 여름처럼 따갑다. 하늘은 바야흐로 제철을 맞이하였노라 훨씬 높고 푸르렀고. 5논이란 논마다 무긋무긋 숙어가는 벼이삭이 아직도 따갑고 살진 태양의 열과 광선(紫外線[자외선])을 마음껏 받으면서 마지막 여물이 여물기에 소리 없이 한창 바빠 있다. 잘 새끼친 소담스런 포기들, 수수목만씩한 굵고 탐진 이삭들…… 향교동(鄕校洞) 넓은 고래실은 올도 풍년이다. 6논두둑으로는 새막이 드둣듬성 불규칙하게 가다오다 하나씩 서 있다. 벼는 뜨 물때가 지났고, 어린아이와 늙은이의 손까지 농촌은 아쉰 시절이라 새 막이 태반은 다 비었다. 7큰마을(本洞) 바로 앞 신작로 건너로 거기에도 새막이 하나. 8여학생 태의 나이는 한 이십이나 되었을까, 남색 몸뻬 입고 같은 남색 조끼를 하얀 머플러에다 받쳐 입고 납작구두 신고, 이렇게 썩 도회지적으로 말쑥이 때가 벗은, 그래서 논두둑이니 새막이니의 흙내나고 촌스런 풍물과는 자못 어울리지 않는 영양이, 그러나 그런 부조화는 내 모른다는 듯이 천 연 덕스럽게 새막 가에 가 발을 대롱거리며 걸터앉아서 새 보는 시늉을 하고있다. 9문주(紋珠)가 고향엘 온 것이었다. 10떼새가 새까맣게 논으로 내려앉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문주는 새 막 기둥에 매달린 메뚜기 꿰미에만 정신이 팔린다. 피 이삭에다 숱해 많이 잡아 꿴 메뚜기들이 저마다 다리를 버팅기고 몸을 비틀고 하느라고 기다란 꿰미 전체가 꿈틀꿈틀 꿈틀거린다. 11'우리 몸에 소위 영양가치란 게 있어 이 지경이 되는구나 할 줄은 모를테지?’ 12이런 생각에 골몰한 참이었다. 13그러자 잠방이 하나만 걸치고는 웃통도 발도 벗은 새까만 꼬마 한 놈이 메뚜기를 연방 잡아서는 꿰미에다 꿰며 하면서 구부러진 논둑을 돌아 나오다가 논에 떼새가 앉은 것을 보고 질겁을 하여 14우이여. 아가씨 새 앉었시요 새. 우이여 우이."하고 소리를 지른다. 15문주도 놀라 우이여 소리를 지르면서 생철통까지 두드려댄다. 귀청이 멍멍토록 요란스런 소음이 잠시 동안 계속된다. 16마악 그럴 때였다. 웬 전문학교 학생 한 사람이 어깨에 룩작 메고 나뭇가지 꺾어 지팡이 해 짚고 한 다리를 절름절름 절면서 동구 밖으로부터 마을을 향하여 그 앞 신작로를 지나다, 하도 이 '영양 있는 새막’의 조화( 調和), 우스꽝스런 풍물에 그만 어처구니가 없는 듯 뻐언히 바라다 보고 서서 갈 길을 잊는다. 17새떼는 이내 쫓기어 날아가고 주위가 도로 조용하다. 그제서야 문주도 신작로에 섰는 학생에게 주의가 갔고, 그 순간 놀람과 더불어 짯짯이 학생을 건너다 본다. 18아이, 난 전문학교 학생만 보면 꼭…… 19다음 순간 문주는 입안엣말로 혼자 그러면서 고개를 돌리는 얼굴이 시방까지와 는 딴판으로 흐려졌다. 오빠 철(哲)인가 하였고, 번연히 긜 리가 없는것이건만 역시 섭섭하던 것이었다. 202 21아가씨 많이 잡었쥬? 22꼬마가 메뚜기 꿰미를 자랑스럽게 쳐들어보인다. 23오냐, 많이 잡았다! 24문주는 새막 기둥에 걸린 것과 비교를 하여 보면서 내 해 갑절두 더 될까 보다. 25아가씨? 26그래? 27성냥 있시유? 28성냥은 무엇에 쓰니? 29이거 궈먹어요. 고소허구 아주 맛있시유! 30참기름에 볶아 먹어예지 더 맛이 있는 거야, 인석아! 31볶아 먹어유? 32그러든지, 볶아 말려서 가루 장만해서 밀가루허구 섞어서 부푸는 가루 넣구 설탕 넣구 해서 빵 맨들어 먹든지. 33빵유? 빵떡 말이쥬? 34그래, 네 말따나 빵떡. 35꼬마놈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 헤벌쭉 웃는다. 36귀동아? 37내? 38너 키 얼른얼른 크구, 기운 세지구 허구 싶잖아? 39기운유? 키 커유? 40이 메뚜기루다 과자랑 빵이랑 맨들어 먹으믄 키가 사뭇 무럭무럭 자라구, 기운이 세지구 허는 법야. 41해해! 증말유? 42그럼……! 그런깐 어여 가 더 많이 잡아요. 43설탕 넣구 빵떡 맨들쥬? 달쥬? 44그럼! 45내! 46대답을 하고는 흐른 잠방이를 치키면서 겅중거리고 메뚜기 사냥을 나간다. 47신작로의 학생은 내처 그대로 길 옆 아카시아 그늘로 들어서서 짐을 내려놓고 쉬고 있다. 그러면서 자주자주 새막 편을 보고 또 보고 하여쌌는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 그 '영양 있는 새막’의 우스운 부조화를 완상하는 연장이 아니라 벌써 한 사람의 낯선 고장을 지나고 있는 단순한 행인으로 돌아가 길이나 또는 무슨 말을 물어보고 싶어하는, 그러하되 저편이 하 그렇게 색깔이 유난히 또렷한 젊은 여자라놔서 썸뻑 말을 붙이지 못하여 연해주 저 로와 하는 그런 내색이던 것이었다. 48신작로의 학생이, 말쑥한 영양이 새막에서 생철통을 뚜드리며 우여라 워여라 새 보는 모양이 기물다왔다면, 이편 문주는 문주대로 학병으로 나갔기 아니면 근로봉사에 열심하여 있어야 할 요샛날의 학생이 룩작을 걸메고 한가로이 시골로 돌아다는다는 것이 괴이쩍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49빤히 다 알고 있는 바 읍내 사람도 향교골 사람도 아니었다. 정녕 서울서라도 오는 타관 사람이었다. 50가이다시꾼(買出部隊[매출부대])? 그래도 설마 서울서 여기까지야! 학생이 더구나…… 아뭏든 전문학교 학생치고는 껄렁하지! 51좀 얌전스럽지는 못한 객기(客氣)였다. 그러나 장난스런 탓이지 악의는 노상 없었다. 52저, 여보십시요? 53학생이 마침내 말을 건네었다. 좁다란 논 한 이랑을 격한 상거라, 말소리를 높여서 할 필요가 없었다. 54퍼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주는 고개를 돌린다. 553 56이 동네 혹시 여관하는 집이 있나요? 57여관요? 58판 농사고장에 와서 여관을 찾다니 우스웠다. 59여관이 아니라두 보행객주집 같은…… 60없답니다, 그런 건. 61……… 62학생은 입맛을 다시면서 한참 있다 다시 63예서 읍내가 몇 리나 되나요? 64시오리라구 그래요. 그래두 꼭 칠 키로예요. 65칠 키로!…… 66학생은 또 입맛을 다시면서 시계를 꺼내어
유로247주소보다, 해를 올려다보다 한다. 해는 중천에서 서로 반나마 겨웠다. 67자행거 탄 사람이 지나간다. 학생은 부러운 듯이 그 뒤를 언제까지고 바라다본다. 68인력거 같은 것이 있을 이친 없구…… 69학생은 혼잣말로 그러더니 70혹시 구장을 찾아가 사정 얘길 하면 말이나 허다못해 교군 같은 거라 두 좀 얻어 줄는지 모르겠군요? 71글쎄요…… 72읍내 가면 공의두 있구 허죠? 73공의요? 74문주는 가볍게 놀란다. 그러면서 이어서 75어딜 다치섰세요? 발이나 다릴?"하고 다급히 묻는다. 나뭇가지를 꺾어 지팡이 해 짚고 절름절름 저는 것을 못 보았던 바는 아니나, 예사 그저 발바닥이 부르텄거나 흔한 무좀 이 거니 쯤 예사로이 여기고 말았었다. 한 것이 의사를 찾고 하는 데에 비로소 남의 병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못하는 기술의식(技術意識)이 퍼뜩 주의를 일 깨웠던것이었었다. 76네, 좀…… 77학생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은 하나, 잠시 잊었던 상처가 다시 아파나는지 무심 결에 이마를 다 찡그린다. 78진작 그러시지…… 79문주는 하마 나무람을 하면서 새막에서 내려서더니, 새막과 신작로 사 이로난 논두둑길로 해서 분주히 쫓아온다. 몸도 호릿하려니와 걸음매하며 모든 날렵 발랄한 품이 가을물의 은어를 연상케 한다. 80어딜 어떻게 다쳤세요? 81바싹 다가서면서 성화하듯 묻는다. 82발바당을, 해필 장심을 볐답니다. 83출혈이 많았세요? 84안직두 좀씩 흐르나 봐요. 85그러면서 학생은 왼편발을 내려다본다. 구두를 신어 겉으로는 별 이상 이보이지 않는다. 86오온!…… 어여 일러루 오세요. 바루 저기가 우리 집예요. 87손을 들어 동네 맨 앞으로 있는 기와집을 가리킨다. 백 미터 상거도 아니 된다. 88문주는 학생이 룩작을 들춰메려고 하는 것을, 발에 힘을 주면 안된다면서 귀동이를 불러댄다. 89새까만 놈이 그새 벌써 메뚜기를 반 꿰미나 잡아가지고 뛰어온다. 90너 이 바랑, 네 기운으룬 댁에꺼정 못 가져갈 텐깐 안아다 새막에다 놓구 지켜 응? 91내! 아가씨 빵떡 안 맨들어유? 924 93처녀때와 젊어서는 평범한 대로 진주(眞珠)라는 이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시방은 아무도 그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전혀 없다고는 잘라 말하기 어려우나, 가사 있다손치더라도 하나 아니면 둘에 지나지 아니할 것이다. 94여자는 대개 시집을 가 자녀를 낳고 나이 들고 하노라면, 어렸을 적의 이름은 어느덧 없어지고 때의 환경에 좇아 아무개 어머니니, 무슨 댁, 무슨 아씨, 무슨 마님이니 하는 새로운 칭호가 ——— 이름이 생기곤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이 환경에 따라 저절로 생긴 이름이라야 부르는 편에서나 불리는 당자나 한가지로 자연스럽고 안길 맛이 있고 하지, 섣불리 만일 아들딸 주렁주렁 매달리고 나이 사십 오십 먹어 머리털이 희끗희끗, 사위 며느리 다 보 게 된 여인더러 무슨 95현숙씨! 96아이 혜련씨! 97라커니 98오래간만이구려, 영자씨!"하고 수작을 붙여보아라. 좀 어색스럽고 얼릴 상 없는지. 99진주라는 이 여인도 그리하여 중년의 한 시절은 철이어머니 혹은 문 주 어머니로 부르고 불리고 하였고, 그러다 시방은 이 고장의 풍습으로 그의 친정 집 동네 이름 옥동(玉洞)을 따 옥동댁, 옥동아씨, 아래청에서는 옥동 마님으로 부르고 불리고 하고 있다. 100우리도 우선 한동안은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101잠깐 어쩌다 잊어버린 듯 이웃에서도, 대문 밖 행길에서도 바스락 소리 하나 없고, 집안은 절간처럼 깜박 괴괴하다. 102앓고 난 끝에 어제 오늘부터 차차로 기동을 하기 시작한 옥동댁은 몸을 대견히 가누면서 안방으로부터 앞마루로 나온다. 병후의 파리한 얼굴에 수심이 어리어 더욱 파리하여 보인다. 마흔일곱…… 무술생(戊戌生) 마흔 일곱이다. 여자라고는 하여도 마흔일곱이란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다. 웬만한 남자 같았으면 막내동이라도 하나 더 봄직한 정정할 나이다. 그러나 옥동 댁은 벌써 늙었다. 쉰이 훨씬 넘었다고 하여도 곧이가 들릴 만큼 늙었다. 반백이다 된 머리는 더구나 환갑 바라보는 노인 방불하다. 103갸름한 얼굴 윤곽, 곱살한 눈초리, 가지런한 콧날, 인자스런 입매. 이런 것이 희미하게 젊었을 적의 모습을 겨우 간직하고 있을 뿐. 그다지도 곱고 아름답던 임진주의 면영은 바이 찾을 길이 없다. 삼십 년의 다난한 여인 행로가 아니었다면 이대도록 일늙어 바스라지지야 아니하였을 것이다. 104딸도 오고 한 길에 추석 송편을 빚을 겸 머슴 시켜 가작(家作 : 自作[ 자작]) 하는 논에서 올벼(早稻)를 조금 털어 말리는 것이 벼멍석에 그늘이 덮인지 오랬건만 아무도 손을 대는 기척이 없어 손수 내려가 양지짝으로 끌어다 놓자던 타고난 부지런이었다. 그러나 막상 마루로 나와서는 문득 사랑 채의 기와지붕 너머로 멀리 바라다보이는 하늘을 바라고 서서 우두커니 정신을 놓는다. 105가을하늘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뜩이나 회포를 돕게 하는 것, 전지의 아들 철을 생각하던 것이었다. 1065 107내지의 어머니들은 이천육백여 년을 두고 한결같이 나라를 위하여 아들네를 전지에 내보내되, 동치 아니하도록 도저한 도야(陶冶)와 훈련과 그리고 자각( 自覺) 가운데서 살아 내려왔다. 그런 결과 일본 여성은 사랑하는 아들을 나라에 바쳤으되 조금도 미련겨워하며 슬퍼하는 등 연약한 거동을 함이 없이 가장 늠름하기를 잊지 아니하는 천품이 ——— 정신이 잡히기에 이르렀다. 어머니 된 정에 노상 어찌 슬픔이 없을 리가 있을꼬마는, 한때 속으로 슬퍼하였지, 혼자서 암루(暗淚)나 흘리면 흘렸지 일상에 상심하는 얼굴을 지닌다거나, 항차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거나 하는 법은 전연히 없다. 108여러 백 년을 나라와 나라 위할 줄을 모르고 오직 자아본위(自我本位), 가정 본위( 家庭本位), 오직 일가족속본위(一家族屬本位)로만 살아온 조선 백성은 따라서 어머니들의 군국에 대한 정신적 준비랄 것이 막상 충분치가
유로247주소못 하였다. 빈약한 편이 많았다. 109나라는 개인보다 중(重)하니라. 110민족의 번영은 언제나 그 민족의 젊은이가 흘린 바 피와 정비례 하느니라. 111조선 사람의 귀에 이런 외침이 울리기는 바로 최근 몇 해에 비롯된 것 이었다. 학식 있고 각성한 사람들은 그 경종(警鐘)을 이성으로써나마 잘 받아들임으로써 자각화(自覺化)·감정화(感情化)하기에 노력을 게을리 아니하였다. 노력은 헛되지 아니하여 성과에 족히 보암직한 것이, 한목 자랑 함 직한것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이요, 이른바 과도시기(過渡時期)이기 때문에 미흡하고, 일변 전반적으로 철저치 못한 구석이 없지 아니한 것이 사실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실망하거나 비관을 할 필요가 절대로 없음은 물론이다.) 112막막히 기둥에 지여서서 구름도 없는 하늘을 보고 있던 옥동댁은 그러다 별안간 몸을 돌이켜 부리나케 건넌방으로 들어간다. 113건넌방은 철이 서울서 하숙하고 있던 공부방을 고대로 옮겨다 놓았었다. 웃목으로 책이 그득그득히 쟁여진 큰 책장이 나란히 두 벌. 아랫목 동창 앞으로는 테이블과 의자. 테이블 위에는 책꽂이와 책꽂이의 책들과 잉크 단지며 철필과 만년필 등속이며, 심지어 말편자(馬蹄)의 문진(文鎭)까지 죄 다가 철의 손때가 묻은 것들이요, 철이 마지막 떠나면서 놓아두었던 그대로의 위치에 고대로 놓여 있는 것이었다. 114아랫목 벽 위에는 철의 전지(全紙)짜리 반신 초상이 한 벌 걸리고, 그와 꼭 같되 캐비네판의 사진은 탁상틀에 넣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학 모에 교복을 입은 재학시절의 사진이었다. 얼굴은 몸이랑 이 남씨집 혈통이라 살이 부하지가 못하나 해맑고 재기가 영롱하다. 그러나 약간 숙인 듯한 이마 하며, 역시 약간 아래로 내려뜬 눈이며가 사람이 다분히 명상적임을 얼른 짐작 키에 어렵지 아니하다. 테이블 한옆으로는 채곡채곡 포개어 논 서너 통의 군사우편이 놓이고, 편기가 오는족족 뜯어보고는 이렇게 모아두곤 하던것이었다. 1156 116옥동댁은 방 가운데에 가 서서 사면으로 이것저것을 둘러본다. 책장에도 가 눈이 멎는다. 테이블에도 가 눈이 멎는다. 그러다 아랫목 벽 위의 초상에 가 필경 눈이 멎는다. 117한참을 초상의 아들을 바라다보는 사이, 곧 그 다문 입이 벙긋 하면서 118어머니!"하고 부를 듯 부를 듯만 한다. 금새 그 가만한 미소가 눈초리로 떠오를 듯 떠오를 듯만 한다. 119철아! 120부지를 못해 소스라친 목안엣 소리로 그렇게 부르면서 털썩 걸상에 가 주저앉는다. 그러면서 두 팔을 뻗치어 테이블의 사진을 집어다 앞가슴에 꼬옥 안는다. 121늘 아들이 보고 싶은족족, 마음이 쓰이는족족 이렇게 건넌방으로 달려 들어와 서는 철의 체취가 풍기는 각가지 물건을 만지고 보고 하면서 한때의 위로를 삼았고, 그러다는 번번이 사진을 그러안고는 애절을 하곤 하던 것 이었다. 122이윽고 옥동댁은 마음을 진정하여 사진을 도로 제자리에 놓고 일어서면서 혼잣말로 뉘우친다. 123부질없이!…… 이러지 말자면서도 중추가 분명치 못해 그러는지! 124남은 삼형제 사형제 잃고도 씩씩하다는데! 겉으로 내색을 아니한다는데! 그래야만 시방은 장한 어미 노릇이라는데! 125윤팔네를 보겠지? 견문으로 하나 지체로 하나 월등히 나만 못한 사람이 건만 조옴 천연스러! 좀 의젓해? 126이성을 채찍질하여 낡은 허물 속의 감정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없지 아니 함 은 퍽도 다행한 일이었다. 127윤팔네는 미천한 신분에 그 역시 중년과부로 외아들 윤팔이 청년 훈련에다 녀 훈련을 치르고 오는 시월 초하룻날 입영을 하게 된 것인데, 그는 전혀 비관이나 실망을 하는 내색이 없었다. 정반대였다. 128나야 다 참 무식하고 성명도 없고 하지만 조옴 좋아? 사내자식으로 세상에 났다가 총칼 메고 난리 치러 나가는 게 호강 아니고 무어람? 그래 대장부가 그 노릇 한번 못해보고 죽드람? 제엔장, 여든에 죽으나 스물에 죽으나 한번 죽기는 일반 ! 명색없이 지지리 오래 살다 명색없이 죽는지 접전( 接戰: 戰爭[전쟁]) 나가 싸움하다 죽으면 오죽 뻐젓해?…… 우리 윤 팔이 녀석이 검사 라드냐 무엇이라드냐 떨어져 접전 못나게 되면 나는 그녀석을 막 몽둥이 질을 해서 쫓어내자든 참인데! 아 그런 걸 자식이라구 집안에 붙여 둬? 밥을 멕여? 129이렇게 윤팔네는 당당하고 씩씩하였다. 본시부터도 여자가 사람 됨이 기개가 무던하고 성품이 괄괄하기는 하였었다. 130옥동댁이 기색을 다스려가지고 마루로 도로 나오는데, 그러자 뒤 울안 쭉 나무에 선지 갑자기 까치 우짖는 소리가 요란히 인다. 131저녁까치는 근심이란다! 132그러면서 마악 대뜰로 내려서는 참에 앞마당 차면(遮面) 밖으로부터 딸 문 주가 허둥거리로 달려든다. 손에는 언뜻 보아도 분명한 군사우편의 봉서 편지를 들고. 1337 134언제나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더럭하기는 군사우편이었다. 135어머니 어머니! 오빠헌테서 핀지 왔수, 왔어. 136오냐. 어서 일러루 가지구 와 좀 읽어다구. 137어머니와 딸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루로 올라가 마주앉는다. 딸은 어머니를 닮는 것이 예사야 예사겠지만, 이 모녀는 유난히 더 잘 닮았다. 갸름한 얼굴과 그 윤곽으로부터 시작하여 고운 눈매, 가지런한 콧날, 애련스런 입, 그리고 귀와 이마까지, 음성까지도 딸은 죄다 어머니의 모습을 탁하였다. 물론 딸은 갓스물에 그 싱싱하고 탄력 있는 품이, 이미 늙어 바스러진 어머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한때 젊었을 적은 있었고, 젊었을 적 이십 무렵의 사진을 내놓고 보면 일푼 틀림없는 시방의 문주 고대로 였다. 138딸이 아무리 잘 닮았기로서니, 차라리 재미거리일지언정 싫거나 긴치 아니 할 며리야 없는 것이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소댕 보고 놀라더라 이르거니와, 다심한 어머니는 딸이 외양에 있어서 너무도 그렇듯 자기를 닮기만 하였다는 것이 혹여 장래의 운명까지도 자기의 다난코 기구한 그것과 한가지로 할 징조나 아닐런가
유로247주소싶은 의구에 문득 불안을 느끼고 할 적이 없지 못 하였다. 139어머니, 그동안 얼마나 궁금히 기대리섰는지요? 140편지는 옛투의 문안과 탈없이 잘 있다는 인사가 있은 다음, 이렇게 사연이 적히기 시작하였다. 딸은 읽고 어머니는 듣고 한다. 141먼젓번의 하서와 위문대삼아 보내주신 약과(藥菓)를 마침 서울서 한 문 주의 편지와 함께 잘 받았삽고, 바로 답서를 올리려는 차에 별안간 우리 부대에 전진명령이 내리어 이곳 ○○성(○○城)으로 옮아오느라고, 와서는 또 이 것 저 것 정리며 준비에 골몰하여 부지중 이렇게 더디었읍니다. 142인제는 일도 너끔하고 겸하여 오늘은 비번(非番)이라 매우 한가합니다. 덕에 사연도 여러가지로 많이 쓸 수가 있읍니다. 우선 이곳이 어떠한 곳이라는 것부터 말씀하여 드리겠읍니다. 143이곳 ○○성은 우리 부대가 접때까지 유둔하고 있던 우리 본 부대( 本部隊) 의 근거지 ◇◇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일백오십 리 가량 들어온 조그마한 옛 성 입니다. 성은 조그마하여도 군사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땅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예서 다시 서남쪽으로 이백 리 가량 더 들어간 곳에 ××라는 큰 고을이 있읍니다. (○○이니 ◇◇이니 ××이니 하고 지명을 정작 숨기어 매우 답답하시겠지만 그는 군사상의 비밀이라 부득이 한 노릇이오니 그런 대로 눌러보아 주십시오.) 그 ××에는 적군이 시방 많은 병력을 집결 시켜 놓고 우리 본부대의 근거지 ◇◇을 쳐들어오려고 잔뜩 노리고 있 읍니다. 144여기까지 읽고 난 문주가 그제야 생각이 나서 145아이 머니 나 좀 봐! 상처(傷處) 치룔 해주마구 남을 데리구 와 사랑 으 서 기 대리게 해놓굴랑!"하면서 혀를 날름한다. 1468 147읽던 편지를 중판을 메어 옥동댁은 순간 파흥이 되는 것 같았으나 이내 그런 내색 드러내지 아니하고 148오온 얘야, 그래 쓰느냐 ? 어여 나가 보아주구서 들어오렴. 149그래두우 이거 마저 읽어예지 누가 오빠 편질 읽다 말구서 딴걸 허우? 오빠가 진중에서 일껀 써보낸 소중한 핀질! 응? 안 그러우, 엄마? 150어린아기처럼 어린 양이 뚝뚝 듣는다. 말만한 새악시가 어린 양이 다 무어냐 고 하겠지만, 이 모녀는 어머니는 언제까지고 젖을 먹여주고 업어 주고하던 어머니에, 딸은 언제까지고 품안엣 적 딸이요 하였다. 어린 양을 하는 딸이나 어린 양받이를 하는 어머니나 그래서 다같이 보다 더 짙은 애정의 유로( 流露) 였으며, 따라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151누구드냐? 152웬 타관서 온 학생인데 발바당을 볐다구. 153얘야, 더구나 객지에 나선 사람을 그리 괄대해 쓰니? 편질랑 다녀 들어와 읽구서 어서 나가 보아줄렴? 154갠찮아요! 염려 없어요! 이거 한 이 분이나 삼 분이문 다 읽을 텐깐, 마저 읽구 가 해줘두 안 늦어요!…… 의사가, 반쪽의산 반쪽의사라두 것 모를까, 머. 155그러고는 편지 계속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156한편 우리 군에서는 우리 군의 작전방침이 있어 우리가 ××이라는 그 적군의 구혈을 쳐빼앗아야 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런데 말씀이지요 어머니, 우리 군이 ××을 치자고 하면 반드시 이 ○○성을 확보하여야만 하는 형편 입니다. 지리며 그밖에 여러가지 조건으로 보아 ○○성을 확보하지 아니하고서는 절대로 ××의 진공을 여의하게 할 수가 없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군은 재빠르게 손을 써 이 ○○성을 우선 쳐빼앗아논 것입니다. 157우리 군에게 이 ○○성을 빼앗긴 적은 대단히 당황하였읍니다. 그들은 우리 군이 ××을 진공하기에 이 ○○성이 없지 못할 요지임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우리 본부대의 근거지 ◇◇을 치자고 하면 불가불 이 ○○성이 그들의 수중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 요지를 빼앗겼으니 낭패가 클 뿐 아니라 이 ○○ 성이 우리 군의 손에 들어오고 보니 제네들의 구혈 ××이 덜미를 잡힌격이어서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입니다. 자연 적군은 무엇보다도 이 ○○성을 도로 빼앗으려고 기를 쓸 것은 분명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을 절대로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그여코 지켜내어야만 합니다. 158어머니, 그만하면 이 ○○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점인 것을 짐작하시겠지요? 그리고 그와 같이 중요한 땅을 지키는 우리 부대의 임무와 아울러 그 우리 부대의 일원(一員)인 소자의 임무가 얼마나 무거운 것임을 또한 짐작 하시겠지요? 159그런 중한 임무를 맡은만큼 부대의 전원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다들 긴장 하여 있읍니다. 그러나 조금 미흡한 것은 우리 편이 너무 병력이 적은 것 입니다. 1609 161문주는 쉬지 않고 편지를 읽어내려간다. 162본부대에서도 ○○성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병력의 전체의 배치상, 부득이 소수 병원의 우리 부대로 하여금 우선 당분간 이를 수비케 한 것 입니다. 불원간 그러므로 병력 증강이 되기는 될 터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병력이 적다고 하여 우리는 추호도 겁하지 아니합니다. 일본 군사는 일당백 하는, 아니 일당천하는 천하의 용맹스런 장졸들입니다. 백배의, 천 배의 적과 접전을 하는 마당에서도 조금치도 두려워 아니하는 것이 일본의 군사 입니다. 그리고 항상 큰 군사와 싸워 능히 이겨내는 것이 진실로 일본군의 일본군다운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맹한 일본 군사 말씀입니다. 163어머니, 두고 보십시오. 어떠한 일이 있든지 우리는 우리가 이 성을 맡은 이상 최후까지 지켜내고 말 터입니다. 그땔랑은 어머니도 '어허 장한지고’ 하시고 만세 불러 주셔요. 어머니, 소자는 그동안 두어 차례 조그마한것이나마 접전을 치르는 동안 한가지 깨우친 바가 있읍니다. 조선에서도 말 하기를 전사(戰死)를 제일 상팔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뜻깊고 적절한 말입니다. 전사! 전사! 칼을 잡고 적과 마주 싸우다 있는 힘,
유로247주소있는 용기다하여 최후까지 싸우다 일순간에 죽는 죽음! 전사! 그것은 늠름하고 영광 되고 자랑스럽고 한 외에, 겸하여 아름다운 죽음, 활홀한 죽음이기까지 합니다. 대장부 세상에 났다 그 이상 보람있는 죽음은 없을 것입니다. 164이렇게 말씀을 하노라면 보나마나 어머니는 정녕 질색을 하시어 '에구 이애가 어떡허자고 이런 불길한 소리를 하는고!’하시고 낙담을 하시겠지만, 어머니 안심하셔요. 천하없어도 소자는 죽지 아니합니다. 어머니께서 친필로 무운장구라 쓰시고, 문주가 센닌바리로 수놓아 주신 것으로 배를 든든히 동 였읍니다. 거기에는 신기(神氣)가 어리었읍니다. 적의 탄환이 감히 범 하지를 못합니다. 어머니, 미국서 만든 탄환을 지나 병정이 쏘는 것에 맞아서 목숨을 버리고 말 우리 어머니의 아들 철이겠읍니까? 부디부디 안심하셔요. 죽지 않고 공일랑 뛰어난 공을 세운 후 자랑스러운 개선을 하여 어머니의 무릎 앞에 절할 날을 부디 안심코 기다려 주셔요. 165미상불 옥동댁은 죽음에 대한 말이 나오는 대문에서는 사색이 심히 당황하 였었다. 문주도 자못 그러하였다. 그러나 '천하없어도 소자는 죽지 아니 합니다……’ 하는 데서부터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빛이 얼굴로 갈리어 들었다. 166아무렴, 그래야 허다뿐이겠느냐? 안 죽구 공은 공대루 뻐젓이 세우구, 조 옴 떳떳허니? 167옥동댁이 혼잣말같이 그러는 것을 문주도 따라 168그럼 어머니!…… 용렬허지만 않구 다 같은 용맹이문 안 죽는 이가 더장 허다우! 16910 170편지는 얼마 남지 아니하였다. 문주는 몰아치듯 마지막을 읽는다. 171어머니, 이곳은 기후가 조선과 방불하고 토질도 같은지 벼농사를 많이 들 합니다. 조선처럼 논에다 심은 벼가 이삭들이 나왔읍니다. 그것을 보고 문득 고향의 추석(秋夕)을 생각하였읍니다. 오곡이 풍등하고 온갖 과실들 이익고 농군들이 풍년을 즐기고 하는 고향. 어머니가 계신 고향. 가고 싶지아니하다는 것은 빈말일 것입니다. 172어머니 손수 만들어 보내주신 약과는 미리 먹어버리기도 아깝고 하여 이 제 달이 제일 둥글고 밝은 날 밤을 기다려 동무들과 나눠 먹으려고 그대로 잘 아껴 두었 읍니 다. 군대에서는 네것 내것이 없답니다. 더구나 내지 사람 병정들은 구경도 하여보지 못한, 그 달고 고소하고 맛있는 약과를 자랑하여 가며 나눠 먹을 일을 생각하면 미리부터 즐겁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들 귀 한 음식이면 서로 나눠 먹고 할 만큼 우리는 의가 좋고 다정히 지낸답니다. 또 상관들도 우리를 퍽 애껴하며, 더우기 부대장께서 소자를 귀애하기란 분에 넘치는 것이 있읍니다. 그런 점도 어머니, 부디 안심하옵소서. 173끝으로 문주도 서울서 잘 있는지요. 소자가 떠나면서 어떠한 일이 있든지한 달에 한 번씩 반드시 귀근(歸覲)하여 적적하신 옆에서 위로를 하여 드리도록 신신히 당부하였는데 그대로 행하는지요. 능통스럽지 아니한 아이니 매양 저버림이 없을 줄은 믿습니다. 174여기까지 쓰는데 마침 비상소집 나팔이 울립니다. 적병이 몇 놈 또 와 서지분 거리는 것이겠지요. 종종 있는 일이요 대단할 것 없읍니다. 그러면 어머니, 이 다음 상서할 때까지 기체후 만안하시옵기 멀리서 엎드려 비 오며이만 갖추지 못하옵나이다. 175편지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176읽던 문주나 듣고 있던 옥동댁이나 잠시 그대로 말이 없이 앉아 숨을 돌린다. 177이윽고 문주가 먼저 응? 어머니? 178오냐? 179오빠가 말유, 생각허는 거랑 말허는 거랑 많이 아주 달라진 것 같지? 180글쎄…… 네 말을 듣구 생각허자니 참 그런 것두 같기는 허구나! 181퍽 달라졌어!…… 그전이야 오빠가 어디 그랬우? 밤낮 무얼 생각만 허구있구, 말두 잘 아녀구. 더구나 자기 속에 있는 말을 누구더러 허우? 182꼬옥 느이 아버지 승미를 닮아 그렇드란다. 183병정도 가구 볼 거야 어머니! 전쟁도 나가 볼 거구. 사람 쾌활해지겠다, 몸 튼튼해지겠다, 좋은 경험 얻겠다, 그러구 나라 위해 싸우겠다 조옴 좋아? 그렇잖우? 응? 어머니. 184오냐, 오냐. 느이게 좋은 노릇이면 나야 거저 좋구말구 허겠니!…… 얘야, 참 인전 어서 좀 나가 보아주어라. 오죽 기대렸겠니? 185옥동댁은 편지를 받아 가지런히 접어서 도로 봉투에 넣고, 문주는 사랑으로 나가고 한다. 18611 187촌농군의 발처럼 크고 거칠어진 발이었다. 188상처는 바른편발 장심 바로 정통이었다. 너비가 한 치나 거의 되고, 깊이도 얕지 아니하였다. 189그 거친 발을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떡 주무르듯 하면서 문주는 서투르지아니한 솜씨로 상처를 처치하여 주고 있다. 190학생의 얼굴이 웃는 것도 아니요 우는 것도 아니게 가관인 것은 점 직스 럼과 아울러 온 전신이 스멀거리어하는 표적이었으리라. 상처 속을 후벼낼 때에야 좀 아팠으련만 눈만 찡그려 감을 뿐 아프단 소리도 못한다. 191오시다 아마 냇물엘 들어가싰든가 보죠? 192향교동은 동구(洞口) 밖으로 까치내(鵲川)라는 조그마한 내가 있어 정강이지는 맑은 물이 더운 여름날이면 지나는 사람을 부르기에 족하였다. 잔 고기가 많고 하여 천렵터로도 마침인 것은 물론이요. 193학생은 장난을 하고 나서 어른한테 들리워 난 어린아이처럼 가뜩이나 주 몃주몃하다. 빙긋이 웃으면서 떠 뭇 떠 뭇 194냇물이 하두 좋길래…… 더웁긴 허구…… 발이나 씻을까 허구서 마악 추구 들어서는데 별안간 발바당이 썸뻑하드니…… 195유리 조각이든 게죠……그래두 우린 밤낮 가 놀구 해두 아무렇지두 않답니다. 196학생이 웬만큼 좀 능청스런 나기였다면 슬쩍 197'내두 낯선 사람이라구 텃세를 하는 모양이죠?’ 한마디 건네었을 것이지만, 막상 그런 주변도 없는 듯 그저 덤덤히 있을 따름이었다. 198화농이 되지 말아예지 헐 텐데…… 199문주는 혼잣말로 그런 걱정을 하면서 상처의 가제 위에다 탈지면을 덧 대고는 마지막으로 붕대를 감기 시작한다. 200한 서너 바눌 꼬맸으문 해두 전 안직 공부두 거기꺼진 못 미쳤구.
유로247주소젤에 또 채비가 없어서…… 대강 소독이나 허구 약만 바르구 했답니다! 201고맙습니다!…… 무어 이만 하면…… 202학생은 인사와 치하를 하면서 붕대가 다 된 발을 끌어들이는 길로 내처 몸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속으로 '간호부, 갈데없어. 서울이나 이 근처 도회지의 병원, 간호부 분명해’ 하고 진작부터 '대관절 어떤 여잔고?’싶어 궁금하던 의문을 마침내 해답 짓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막상 마음이 어딘지 섭섭하다고 일변 미안 스러워못하겠는 해답이었다. 어떻게든 그것을 도로 부인하고만 연해 싶었다. 203학생이 얼른 그렇게 일어서는 것을 보고 문주는 질겁을 하면서 마주 일어선다. 204안됩니다! 205네? 206지금 거기다 신발을 신구 운동을 허구 허시문 안된답니다! 괜히…… ?…… 207다아 나으실 때꺼정 가만히 기세예지 해요! 208그래두…… 209안되세요 ! 여기 우리 집이서 기시문서 메칠 치룔 받으세예지 해요! 210썩 어른스럽고 명령적이었다. 21112 212학생은 상한 발을 발끝으로 딛고 서서 속으로는 제법 '고거 맹랑허이!’ 하면서도 하는 양은 여전히 파겁 못한 어린아이처럼 말이랑 떠듬떠듬 213저, 오늘 해전으로 되두룩이면 읍내꺼지 좀 대가야 헐 일이 있어서 불가불…… 214그렇지만 지끔 무릴 허셌다 영 아주 탈이 나든지 허문 그땐 정말 일을못 보시구 말 거 아녜요? 215건 그렇지만서두 개인 사정보다두 책임상 어디…… 216무슨 회합에 출석허실 참인가요? 217회합두 있구, 그러구 논두덕으루 많이 좀 돌아댕겨야 헐 일이 돼서. 218논두덕요? 219그제서야 문주는 학생의 교복 단추와 그리고 마룻전에 놓인 학모의 모 표에서 그가 ××고농(高農)의 학생인 것을 비로소 알아낸다. 발이 그처럼 크고 거친 것도 알고 보니 근리하였다. 상처와 그 치료하는 것에만 열심하여 있느라고 그가 어떤 학생인가에 대한 관심은 미처 일지 아니하였던 것이었다. 220'오오, 암모니아전문!’ 221또 이런 얌전스럽지 못한소리를 속으로 혼자 바특 웃는다. 222고등농림이라고 하면 여학생들이 으례껏 암모니아전문이라면서 웃기부터 하는 줄을, 그리고 여느 전문학교 학생과는 딴 물건인 것처럼 가외로 쳐 버리는 줄을 학생 자신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여자가 교복 단추하며 교모의 모 표를 돌아보다 혼자 웃는 속이 다 그 속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조 금도 불쾌할 것은 없었다. 투박스런 생김새로 보아 천품이 우선 그렇게 신경이 굵 스름 할 것이고, 여러 해 동안 학교에서의 농민적인 훈련으로 하여 그럴것이었다. 거기에다 겸하여 밉지 않게 생긴 여자가 밉지 않게 굴면서 그러던 것이매 또한 그럴 것이었다. 223그럼 농사지돌(農事指導) 하러 오시는 길이신감? 224지도랄는지, 내 공부삼어 실습이랄는지. 225퍽 멀리들두 오셔!…… 여름참엔 보니깐 근처 농업학교 생도들은 와서 조력두 해주구, 가르쳐두 주구 그랬는데…… 한창 바쁠 때라 농사허는 집 이서들은 여간만 힘을 입은 게 아니랍니다! 226저이나 내나 그저 위문이폐문이죠! 227그런데에, 그럼 읍내 면사무소루 가시나본데 오늘루만 그예 가셔야지 허시나요? 228오늘꺼정 당도하기루 연락이 돼 있으니깐 면장서껀 기대리기두 할 것 이구…… 229그러자 안채로 난 사랑 중문으로부터 옥동댁이 조용히 230문주 예 있느냐?"하고 기척을 하면서 앞 대뜰로 천천히 돌아나온다. 231학생과 옥동댁이 우선 서로 얼굴이 마주친 것은 극히 자연한 순서 였으나 마주치는 순간 옥동댁의 얼굴에 소스라쳐 놀란 빛이 드러남은 의외였다. 하 되 그것이 주소로 아들 철을 그려하는 나머지 외양 차림차리를 같이한 사람을 ——— 전문학교 학생을 ——— 보기만 하면 반사적으로 놀라기부터 하는( 아까 문 주가 새막에서 이 학생을 보고 가슴이 울렁하듯이) 그런 종류의 놀람이더냐 하면 그도 아니었다. 23213 233학생은 천연하였다. 234노인이 이 여자의 어머리라는 것을 직각하기에 힘들 것이 없었고, 따라 경의와 호의를 띤 얼굴로 방금 무어라고든 인사엣 말이 나오려고 하는 외에는 아무 다른 내색이 드러나는 것이 없었다. 235옥동댁의 놀라와하는 얼굴 표정은 좀처럼 가시지 아니하였다. 문주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상하여 하다 묻는다. 236어머니, 이 학생 알우? 237알아두 이만저만찮이 아는 얼굴인데…… 누구요 어머니? 238글쎄…… 239너붓한 얼굴. 그 얼굴에 알맞도록 다 굵직굵직한 이마하며 눈이며 코, 입이며 귀며 등속의 모든 부분품. 그리고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언뜻 우둔 스레 보이면서도 자상히 뜯어보자면 은근한 재기가 어리어 있는 기상…… 이 것이 더욱 유난히 낯에 익고 사라지지 아니한 채 기억에 남아 있는 좌우간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정작 누구냐는 것은 생각이 나지아니하였다. 문주가 이번엔 학생더러 묻는다. 240우리 어머니 혹시 서울이나 어디서 만난 일 있세요? 241아아뇨. 통 히…… 242학생은 고개를 젓는다. 그러다 그제서야 앞마루로 한걸음 나서면서 허리를 굽혀 243이렇게 와 폘 끼쳐 드려서!…… 올라오시지요. 보입겠읍니다. 244절은 받아 무얼 허우? 어여 그냥 앉으시요. 245옥동댁은 늙은 사람이라서 절하고 뵙겠다는 태도가 요새 젊은 사람으로 희 한 스러 문득 기뻤다. 매양 법도(法度) 있이 보고 배운 데가 있음을 말 함이요, 그 행신 점잖스럽다는 사실이 또한 그가 분명코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재료의 한가지였다. 246그래 다친 덴 어떻소? 과히 중하지나 않소? 247말씀 낮추세요. 젊은애들더러 노이신네께서 그렇게…… 248남의 댁 귀한 자젤 아무리 늙었기루니 말을 함부로 해서 되우?…… 그래 문 주야, 잘 좀 보아 드렸느냐? 249해드릴 건 다 해드렸는데 글쎄 그 상철 해가지구 지금 읍내루 가실 양으로 저러신다우! 250그럴라 말구 불편허나따나 내 집에서 하루 이틀 유허면서 웬만치라두 상철 나어가지구 떠나게 허우. 촌구석이 돼서 대접헐 것두 변변치가 못 허구해 손님을 만류허기가 되려 민망허우마는. 251별말씀 다 하십니다…… 긴한
유로247주소볼일루 읍내 면사무소꺼정 가든 길이 돼서요. 252무슨 소간인진 모르겠소마는 발을 저럭허구서야 가는 수가 있소? 그래 두 정히 급헌 일이라면 오늘은 이왕 저물었으니 내일 일찌기 떠나게 허우. 아무 거라 두 탈 걸 하나 분별해 드릴 테니…… 오온 호강하러 댕기는 사람인가요? 이만침 치룔 해주섰으니깐 시오리나 이 십리쯤야…… 253그러는 것을 문주가 가로막으면서 254호강을 시켜 드리자구 그러나요? 상철 낫워 드려서 우리 고장 농사지 돌잘 해주시게 하잔 뜻이죠. 25514 256꼭 제 고집대로만 하고 한마디도 남한테 지지 아니하려 드는 새 악 시라고 학생은 생각하였다. 257새막에서 메뚜기 사냥을 하던 놈만큼이나 새까맣고, 몸뚱이에 걸친 것이라고는 역시 잠방이 하나뿐이요 한 놈이 서슴지 않고 사랑마당으로 들어선다. 들어서면서 밑도끝도 없이 하는 소리다. 258주사침 누아달래유! 259세 사람의 눈이 일시에 그리로 몰린다. 260누가 아파 그러느냐? 261옥동댁이 묻는다. 262우리 동생유. 263어떻게 앓드냐? 264죽을 양으루 해유. 265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나! 그래 아범은 어디 가구 없느냐?…… 266그러다가 옥동댁은 생각이 나 267오 참 지난달인가 보국단으루 뽑혀나갔지."하면서 딸을 돌려다본다. 268가 좀 보아주렴? 269누구네유 어머니? 270아따 판돌네라구 우리 개똥배미 여덟 말지기 부치구 허는 사람 있지 않으냐? 눈 핼끔헌…… 271오오 판돌네! 사내가 여태 상투 짜구 헌. 272저놈 아래루 네살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놈이 아마 관격이 됐거나 했나 보구나. 273문주는 부리나케 방바닥에 늘어놓았던 치료제구를 거듬거듬 가방에다 넣어가지고 나선다. 그러면서 학생더러 274그럼 아마 일 시작허시기꺼진 날짜 여유가 조금 있는 모양이니깐 낼 석양 때 가시게 허세요 네? 275네!…… 그렇게만 농사꾼이 발 좀 상했기루 어떻게 일일이 안정을 한다, 여러 날씩 치료를 한다 합니까? 농사꾼의 상처엔 흙이 제물약이랍니다. 276아뭏든 환자란 건 의사의 명령을 절대 복종해야는 법예요! 277그러고는 웃으면서 어머니, 댕겨와요."하고 꼬마를 따라 총총히 나간다. 278온 어디서 시끄런 것두 !…… 커다란 기 집아 이 년이…… 옥동 댁은 웃으면서 혼잣말같이 그러다가 학생을 돌아본다. 279서울 가서 여자의전을 다닌다우. 공부라야 오죽헐꼬마는 종종 내려올 때마다 바르는 약이니 먹는 약이니 주사약이니 마련해가지구 와선 동네서 누가 앓는다면 쭈르르 가 보아주구…… 그런다치면 더러 효험을 보는 수두 있구!…… 그래두 난 잘못허다 남의 병 더쳐놓지나 않나 해서 늘 조심스럽구 마음이 아니 놓여서. 280……… 281학생은 말은 없으나 대단히 만족하고 속 후련한 것이 있었다. 여자가 간호 부가 아니요 여자의전의 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떻게도 다행하고 기쁜지 몰랐다. 282만일 그가 잠깐 반성을 할 여유가 있었다면 283'온 아니꼽게시리, 네 주제에 간호부라고 미흡해하고, 여자의전 학생이라고 좋아하고 할 건 어딨드냐?’하고 응당 한바탕 타박을 주었을 것이다. 284딸을 둔 어머니는 낫세의 총각도령을 보면 딸 시집 보낼 걱정을 하곤 하는것이 예사다. 옥동댁도 그 생각에 이윽고 골몰하면서 안으로 들어간다.2. 모시에 어린 追憶[추억] 31 4단호박을 많이 두고 팥고명도 많이 두고 한 지름한 호박떡을 크막한 사 기함에 담아 뚜껑 덮고 무우동치미 담은 보시기 한옆에 곁들여 쟁반에다 받쳐 들고 사랑으로 나와 무료히 앉았는 학생에게 권한다. 5시장허겠수. 저녁 될 때꺼지 이거라두 좀 자시우. 6온 손수 이렇게…… 7말주변이 없는 학생은 여러 말로 겸사며 치하 같은 것을 할 길이 없어 그저 민망해하는 것으로 인사와 대답을 삼을 따름이었다. 8낮차루 아마 내려 들어오든 길인가본데 정거장 앞인들 이새 무슨 변 변히요 기 거리니 있을 리 없구…… 즘심을 그래 못 자섰겠구료? 9네! 10거 보겠지. 객지에 나서면 다 절루 고생이야…… 어서 좀 드우. 덥혀 내오려다 호박떡은 더워선 더워 맛이요, 차선 찬맛이란 다 길래…… ……… 어서 드우. 내 들어가 물 떠 내보내리다. 하루 열 낄 먹어두 때때루 속이 헛헛허구 헐 나이에 조옴 그래 시장했어! 쯧쯧! 11그럼 먹겠읍니다. 12학생은 합 뚜껑을 벗겨놓고 저깔로 뜨기 시작한다. 시장한 사람이 아니라도 그 먹음직스런 품이 대하는 이의 구미를 돕기에 족한 것이 있었다. 13고향이 어디요? 14공주(公州)올시다. 충청남도 공주. 15공주!…… 16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듭 17공주, 공주…… 하고 뇌 더니 18고향 댁엔 양친 다 구존해 기시우? 19네. 20여러 형제에? 21제 아래루 누이 하나허구 동생 둘이 있구 헙니다. 22퍽 번족한 댁이구려!…… 그럼 학생이 맏이면 양친께서 춘추가 그 대지 높으시진 아니허시겠지? 23아버님께서 마흔아홉이시구, 어머님이 갓쉬흔이세요. 24학생은 일변 먹으면서 이야기 대답을 하면서, 또 일변 속으로는 어떤 노인인지, 보도록새 인자스럽고 점잖고 그러고 말마디가 퍽도 유식하다고 탄복을 하여 마지않는다. 25그러구 참 성씨는? 26추(秋)가올시다. 27추씨? 28반문하는 옥동댁의 음성이 약간 높았기도 하려니와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놀람과 동요의 빛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놀람은 처음의 놀람과 달라 확 연히 무엇을 깨달은 데서 온 놀람이요, 따라서 그 동요임에 틀림이 없었다. 29추씨, 오 추씨. 30옥동댁은 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 자기의 그런 놀라함과 동요의 빛을 그에게 뜨이지 아니한 것이 자못 다행하였다. 31갈데없었다. 마지막으로 성이 맞았다. 나이도 정녕 그 어림일 테였다. 고향이 공주였다. 그 나머지야 물어보나마나한 노릇이었다. 32옥동댁은 안으로 들어가 하인 귀동아범을 시켜 닭을 한 마리 살진 놈으로 잡게 한다. 그러고 몸소 나서서 찬수 분별을 한다. 332 34한 필의 모시가 옥동댁의 무릎 위에 반만 펼쳐져 놓였다. 35저녁을 치르고 아래청에서들도 마지막 동자질까지 다 마치고 제각기
유로247주소제 구덕으로 헤어져 가 일찌감치들 자리에 들었고 하여, 아직 초저녁이건만 집안은 자는 듯 조용하였다. 36딸은 둔 어머니는 좋은 사윗감과 아울러 농에 넣어 보내줄 옷감 또한 작지아니한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시방은 전시. 평화시절처럼 화려하고 많은 옷 을 장만한다는 것이 부질없기도 하려니와, 가사 욕심을 부리자 한들 물자가 없는데야 무가내하였다. 오직 장롱 속에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뒤져내어 쓰는 대로 쓰는 것이요,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다. 옥동 댁의 무릎 위에 펼쳐져 놓인 한 필의 모시도 그런 사정에서 시방 깊이깊이 간직되었던 장롱 밑으로부터 꺼내어진 것이었다. 37모시는 그러나 막상 소용이 될 수가 없었다. 삼십 년이나 된 한 필의 모시였다. 모시보다 더 질긴 피륙도 삼십 년이면 성하지가 못할 것이거늘 그 약한 모시올이랴. 38담뱃잎을 틈틈히 넣어 싸고 싸고 하여 두어 왔고, 가끔가끔 거풍을 시킨것은 물론이었고, 그러다 신약으로 방충제를 이용할 줄 알면서부터는 그 법을 정성스레 시행하였고…… 그 덕에 좀만은 감히 침노를 하지 못하였다. 한 자리도 좀이 삭은 곳은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 감이 저절로 삭아져 버리고 말았다. 조금 힘주어 잡아당기면 필필 갈라지도록 삭아졌다. 거기에다 빛깔은 누렇게 절었고. 해서 도저히 지금의 옷감으로는 소용이 될 수가 없고 말았다. 39삭고 빛 전 한 필의 이 모시가 비록 옷감으로서는 소용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지만, 모시 그것에 어린 옥동댁의 삼십 년 ─ 시집 와서부터만 쳐서도 삼십 년의 ─ 길고 다난한 추억은 한점 한끝도 가실 바가 없었다. 모시 가는 올마다 추억은 면면히 그대로 어리어 있는 것이었었다. 40사랑에 유하는 학생한테 잠깐 나갔던 문주가 신발 끄는 소리를 내면서 들어온다. 41달이 인전 퍽 밝을 텐데 흐렸어, 어머니! 42그러면서 방으로 들어서다가 어머니가 램프불 아래서 난데없는 모시를 무릎에 펼쳐놓고 만지는 것을 보고 눈이 동그래진다. 43웬 모시유 어머니? 44오냐…… 학생 나그네는 어떻드냐? 45낼 보아예지 알죠!…… 이런 모시가 다 있수? 46삼십 년이나 묵었으니 그럴 밖으 더 있느냐? 47아유! 삼십 년인다치문 어머니, 나보담두 열 살두 더 먹었구랴? 48그렇단다. 이걸 느이 진외조할머니께서 손수 모시를 째서 올을 날아서 짜서 깨끗이 마전을 해서 나 시집 오는 농에다 넣어주셌더란다!…… 다른건 다아 없애면서두, 이 모시 한 필일랑은 손을 아니 대구서 알뜰히 건 살해 왔 드니…… 49그런 걸 무엇허러 끄내우 어머니? 50너 시집갈 농지기루 치마저고리나 잡아볼까 허구서 끄낸 것이 못 쓸까 보다 아무래두…… 51누가 시집 간대나 머. 523 53그럼 시집 아니 가구 호박이라구 혼자 늙니? 54인제 오빠가 개선해 돌아오구, 결혼허구, 그러구 나문 나두 어련히…… 55네 오라비야 돌아올 날이 조만이 있느냐? 또 살아서 돌아오길 어찌 기약 허며! 56걱정허실라 말래두! 인제 수훈갑(殊勳甲)에 금치 훈장 타가지구서 떵떵 거리 구 돌아올 때만 보아요! 57그랬으면야 조옴 좋으랴만서두! 58오빠 편지에두 그렇게 썼잖었수? 59아뭏든지 넌 명년이 졸업이구 허니 먼점 시집을 갈 도릴 허는 게 내 생각엔 졸 상부르다만. 60나 시집 가구 없으문 어머닌 어머니 혼자서 어떡허구?…… 오빠가 와 보군, 아 너 이 기집애, 그샐 못 참아 어머니 혼자 떼내던지구서 시집을 갔어 ? 이 천하에 본초 없는 것 같으니로고 허문서 막 욕허문 어떡허우? 에구 무서…… 61……… 62어머니, 어머니? 63오냐. 64옥동댁은 대답이랑 얼굴이랑 다 건성이고, 무릎의 모시자락을 만지작 거리 면서 딴 생각에 정신이 팔린다. 65어머니, 무얼 또 그렇게 생각허우? 66오냐. 67에이 갑갑해. 68문주는 엔간히 어머니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고 웃목으로 넌지시 물러 앉아 책을 펼쳐든다. 69서너 장이고 읽고 났을 때였다. 70문주야? 71어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들면서 이상히 곡진한 음성으로 딸을 부른다. 72어머닌 가끔 그렇게 시춤허구 있는 거 난 싫드라! 73일러루 가차이 온? 74문주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무릎 앞에 와서 앉는다. 75문주야? 76응? 77내가 오늘밤따나 맘이 유난히 산란허구나! 78왜, 어머니? 79느이가 노상 듣구퍼하는 이야기 있지? 80어머니 시집살이하든 이야기? 81시집살이하든 이야기, 쫓겨가든 이야기, 서울루 가서 지나든 이야기, 느이 아버진 돌아가시구 느일 데리구 고생살이하든 이야기…… 그거 시방 다아 이야기허우? 82그걸 좀더 있다 네 오래비 장가나 들구 헌 담에 느이 남매 앉혀놓구 자초지종 다아 이야길 하쟀든 것이 네 오래비는 저렇게 나갔구…… 우환중에 내가 이렇게 병이 잦구 허니, 그러다 잿불 사라지듯 깜박 사라지는 날이면 느이한테 한이 될까 보구나. 그러니 너라두 우선 들어두었다 이담에 네 오래 비한테 두 들려 주구 허두룩 해라, 응? 83어머니 입으루 오빠한텐 또 한번 허문 더 좋지 머. 84어디서버틈 이야기 허두를 끄낼거나? 85혼잣말로 그러면서 옥동댁은 지그시 눈을 감는다. 한참 동안이나 그러고있다 퍼뜩 86그때두 마침 요때처럼 추석 머리 였 드니라…… 하고 이야기를 내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한 팔자 기박한 여인이 삼십 년 의기 나긴 세월을 두고 그의 운명과 싸워 오던 설화는 마침내 풀리어나오던 것 이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