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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차 건강검진 및 결격여부 판정
  • 최종 합격 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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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오늘도 11시 반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한다. 숙소 밖을 나온 건 11시였으나, 이스탄불 교통카드를 놓고 온 걸 한참 뒤에 깨달아버렸음... ​ 오늘의 일정은 돌마바흐체 (Dolmabahçe) 궁전이다. 톱카프 궁전이 좀 후지다고 생각했던 오스만 제국의 31대 술탄 압뒬메지트 1세의 명령으로 1843년부터 1856년까지 지어졌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궁전 하나 짓는답시고 1년 세수의 1/4이었던 5만 리라가 투입되었는데, 이걸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2조 5천억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참고로 한국에서 가장 공사비가 많이 든 건물인 롯데타워가 대강 4조 정도 들었다.) 안 그래도 하향세였던 오스만 튀르크의 경제는 이 공사로 치명타를 입게 되고, 결국 오스만 정부는 1875년 파산을 신청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이 사단을 만든 압뒬메지트 1세는 궁전이 완공된 지 5년도 안 돼서 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 불과 38세의 나이로 말이다. ​ 어찌 되었거나 그 이후로도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 튀르크의 마지막 정궁으로써 기능했다.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자 궁전은 튀르키예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손으로 넘어갔다. 1938년 아타튀르크가 세상을 떠난 후 궁전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지금까지 튀르키예 재정에 톡톡한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국가 행사 같은 중요 이벤트 때도 현역으로 잘만 쓰이는 중이다. ​ ​여타 궁전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입구 쪽만 자유롭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가능하다. 보면 알겠지만, 톱카프보다는 훨씬 더 유럽 궁전에 비슷한 양식이라고 보면 된다. ​ 튀르키에 정부가 운영하는 공식 유튜브에 360도 VR 카메라까지 올라와 있으니까 랜선에서 편하게 즐기시면 된다. 아까도 말했듯이, 돌마바흐체 궁전은 그리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은 만큼 톱카프에 비해 이야깃거리는 적은 편이다. 대신 인테리어는 지금까지 가봤던 궁전 중에서 제일 본인 취향이었다. 왜 2조씩이나 돈을 들였는지 이해는 되긴 되더라.​ 톱카프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왕실 유물만큼은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후기 오토만 왕조는 크리스털에 아주 진심이었다. 특히 프랑스 바카라에서 생산된 크리스털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 찾아보니 한국 백화점에도 입점해 있더라.) ​물통이 금으로 장식된 거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커피잔 주제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한 잔이 아니라, 세트 전체가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다.​저 오른쪽에 있는 친구는 다이아 + 루비다. 보드카 담고 싶게 생겼다. ​색깔 선택이 꽤 자유분방했다. 이슬람 문화권은 특정 종류의 색깔만 쓸 거라는 편견이 보기 좋게 깨졌다. 선호하는 색상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그 스펙트럼 자체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 ​얘네는 마노로 만든 담뱃갑 세트다. 위에 박힌 건 당연히 루비다. ​역시 그릇이 빠지면 섭섭하다. ​ ​돌마바흐체 궁전의 하이라이트는 다름 아닌 이 크고 아름다운 크리스털 샹들리에다. (사진 출처: 돌마바흐체 궁전 공식 웹사이트). 4.5톤짜리 샹들리에를 영국에서 옮기기 위해 26대의 컨테이너가 동원되었고, 튀르키예에서 다시 짜 맞추는 데만 두 달이 걸렸다고 한다. 지금도 정부 공식 행사 때 절찬리에 애용되는 방이라고. ​크리스털로 만 되어 있는 저 계단 역시 돌마바흐체 궁전의 명물이다. 이쯤 되어서 듣는 세기의 명곡. 링크가 이상하다면 기분 탓일 테다. 궁전 한복판에서 웃참하느라 참 힘들었다. 톱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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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과 마찬가지로 돌마바흐체 궁전에도 하렘이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는 아담하긴 해도, 가구 같은 내부 장식은 외려 더 화려한 편이다. 여기도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긴 한데, 아까에 비해서는 경비가 확연히 덜 삼엄했다. (아예 대놓고 핸드폰을 꺼내드는 대만? 홍콩? 쪽 부부도 있었다. 좀 적당히 하라는 의미로 쳐다봤더니 외려 본인들이 성질을 내더라.) ​사실 튀르키예 사람들이 하렘을 찾는 이유는, 여기가 다름 아닌 튀르키예의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의 집무실이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의 국부’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사후에도 튀르키예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보니까, 현지인들도 성지순례 겸 오는 경우가 많다고. 위 사진에 있는 방이 바로 아타튀르크가 생을 마감한 침대다. ​​하렘 뒤편에 있는 자그마한 정원. 얘네들도 정부 세금으로 밥 먹고 있는 거겠지?​ 수많은 방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뭔가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톱카프와는 달리, 돌마바흐체 방문은 짧고 굵게 끝났다. 관람을 끝내고 트램 역으로 돌아오니 벌써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대였다. 한 끼 정도는 길거리 음식이 아닌 좀 더 제대로 된 터키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가게 된 Kikirik. 다른 곳과는 달리 여기는 가격대가 꽤 높은 축에 속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꼭 먹어볼 가치가 있는 맛이었다. ​ 전채 요리로 나왔던 특제 수프. 목살과 버터, 레몬, 마늘로 낸 고기 수프다. 레몬이 들어갔다는 것만 제외하면 곰국과 꽤 유사한 맛을 냈다. 느끼하고 묵직한 스타일의 국물이라서 고춧가루 잔뜩 쳐서 먹으면 은근 해장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 터키 동남부 지방의 전통 음식인 Perde pilavı. 주인장이 여기 시그니처 메뉴라며 자신 있게 권하니 안 먹을 도리가 없었다. 겉에만 보면 영락없는 빵 같은 음식이지만, 칼로 속을 쪼개면 후추랑 양파로 간을 한 닭고기 아몬드 볶음밥이 나온다. 저 볶음밥이 진짜 예술이었다. 간을 많이 하지 않아 전반적으로는 담백하고 깔끔하면서도, 후추랑 양파가 느끼함을 잡아주어 질리지 않고 계속 술술 넘어가는 맛이었다. 되게 밸런스를 잘 잡았다고 해야 하나? ​ 역시 주인장이 직접 추천해 주신 살구 콩포트(compote). 사실 콩포트라는 단어가 좀 걸려서 – 불어의 콩포트는 과일과 설탕 시럽, 향신료를 섞어 만드는 잼 같은 음식에 가깝다 – 저걸 시킬까 말까 망설였는데, 그냥 블렌더에다가 살구를 갈아서 나오는 정직한 음료였다. (그리고 15리라(=1100원)이면 저걸 안 먹는 게 더 이상하다.) 설탕이 안 들어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눅진하면서 자연스러운 단 맛이 매우 훌륭했다. ​ 메뉴판에 올라온 사진만으로는 perde pilavı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아서 메뉴를 하나 더 시켰었다. 실수였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perde pilavı만으로도 배부르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요 친구는 터키와 그리스에서 먹는 음식인 Dolma다. 우리나라의 쌈밥과 비슷한 음식으로, 포도잎에다가 쌀, 다진 고기,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넣어서 찌면 된다. 첫 맛은 매콤 시큼하고, 고기와 쌀의 담백한 맛이 뒤를 잇는다. (치즈가 페타 치즈같이 좀 퍽퍽하고 신 느낌이다.) 이쯤 되면 느낌이 올 거다. 맛은 있는데,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가는 음식이다. ​ 위장은 이미 항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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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쳤지만 주인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트볼까지 샘플로 알차게 챙겨주신다. 진짜 음식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기분이었지만 본인을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직원들을 차마 외면할 수는 없었다. 오후 3-4시에 밥을 먹다 보니까 애초에 사람이 본인밖에 없었다. 주인장은 한때 이스탄불 주식시장에서 일하다가 정년퇴직한 엘리트셨다. 기실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다. 전반적으로 영어를 그다지 잘하지는 못하는 튀르키예 사람들과는 달리 이 분은 유독 영어도 청산유수였고, 그냥 사람 자체가 여유롭고 귀티 나 보였었다. 더 이상 금융계에서 일하는 건 힘에 부치긴 해도 – 그리고 요새 튀르키예 경제가 박살 나는 중이긴 하다 – 일을 아예 안 하는 건 또 아닌 것 같아서 (그분 말로는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건 아니라고’ 한다.) 지인들이랑 같이 최근에 식당을 차렸다고. ​ 아 맞다. 그리고 결혼은, 천국인 날도 있고 지옥인 날도 있는데, 일단 뛰어드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살아지게 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숨 참고 러브 다이브 하면 된다. 무슨 결혼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네, 여자친구도 없는 마당에​ 이스탄불이 전반적으로 개발도상국 특유의 시끌벅적하고 정돈되지 않은(?) 그런 분위기의 도시긴 하지만, 요 구역만큼은 여유로움이 좔좔 넘쳐흘렀다. 혹시 몰라? 요런 데라면 괜찮은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을지? ​ Kikirik 바로 앞에 위치한 Coffee Sapiens. 좀 잘사는 동네에 진입해서 그런가, V60, Chemex, Aeropess, French Press 등 별의별 추출 방식을 다 쓰더라. 본인이 집에서 V60/Aeropress를 쓰는 만큼 이날의 커피도 V60로 주문했다. 주인장이 영어를 전혀 못 해서 통역기로만 대화를 해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서로 레시피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요새 튀르키예 사람들도 드립 커피 많이 찾는다고.) 본인이 주문한 원두는 에티오피아 Kochere GR1이었다. 딱 정석에 가까운 좋은 커피였다. 뭐 희귀 품종인 Bourbon Sidra를 thermal shock 공법으로 처리해 커피에 패션프루츠 크림과 스파클링 와인 맛이 느껴지고 어쩌고저쩌고... 그런 진보적인 스타일의 맛이 아닌, 적당한 시트러스 류의 산미 + 부드러운 카카오 노트 + 약간의 시럽 같은 단 맛이 균형 잡히게 섞인 호불호 없는 커피? 주인장이 이스탄불에서 가장 핫한 카페 세 곳을 알려주겠다며 Coffee Dept, Spada, Probador Colectiva를 적어주더라. 애석하게도 본인은 한 곳밖에 가지 못했지만 커피에 진심인 분들은 한 번쯤 참고해 보시길 바란다.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이스탄불 현대 미술관. 안타깝게도 아직은 공사 중이었다.​요런 데는 한국 신도시 느낌 나는 듯. ​이스탄불에서 제일 보고 싶었던 돌마바흐체랑 톱카프를 보고 나니까 (아야 소피아도 있긴 하지만 줄 서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큰 기대를 안 했다) 더 이상 뭘 꼭 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 일단은 배가 너무너무 불렀고, 어제 못 봤던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도보로는 40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 뭐 못 할 이유도 없었다. 날씨도 걷기에 최적화된 날씨였고. (11월 초 기준으로 밤 기온 12-14도, 낮 기온 18-21도 언저리였다.) 갈라타 다리를 건넌다. 상업 시설이 밀집한 신시가지 Beyoğlu와 왕궁과 종교시설이 위치한 구도심을 이어주는 다리다. (역사적으로도 Beyoğlu는 비-무슬림계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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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이었던 만큼 세속적인 성향이 짙었던 구역이었다. 그런고로 이스탄불 시민들한테 갈라타 다리는 이질적인 두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인식되곤 했다.) 2층은 도로와 트램 노선이 깔려져 있고, 1층은 해산물 음식점들이 입점한 독특한 구조다. 보면 알겠지만, 음식점과 바다가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우리로 치면 잠수교 같은 위치에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는 셈이다. 그나마 서울에서 가장 근접한 장소를 꼽자면 세빛둥둥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스탄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를 뽑으라면 주저 없이 갈라타 다리를 꼽을 테다. 아니, 개인적으로 이스탄불의 정체성을 가장 잘 집약한 장소가 갈라타 다리라고 생각한다. 바다 쪽을 바라보면 속이 뻥 뚫리고, 길가로 시선을 돌리면 또 이 도시가 얼마나 번잡한 도시인지가 확 느껴지고 (=전에도 얘기했듯, 그 개발도상국 특유의 시끌벅적하고 와글거리는 분위기가 있다), 남쪽을 바라보면 또 제국의 화려한 과거를 보여주는 거대한 모스크가 눈을 즐겁게 한다. 갈라타 다리의 어원이 된 갈라타 탑이 여기서도 선명하게 잘 보인다. ​​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로 가는 길에 있는 Mısır Çarşısı (영어로는 Egyptian Bazaar). 지나치게 관광지화 되어버린 그랜드 바자르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장소다. 다만 아직까지는 관광객들이 상대적으로 덜 오는 만큼 영어로 소통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수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도착한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와 함께 ‘이스탄불 3대 모스크’로 종종 언급되곤 하는 곳이다. (아야 소피아는 전에도 언급했듯 2-3시간은 줄을 서야 하고, 블루 모스크는 당시 내부 공사 중이었다.)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모스크 내부는 꽤나 한적했다. 아마 주요 관광지랑 동떨어진 위치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쉴레이마니예 모스크가 건축적으로 진보된 건물인 증거 하나: 돔의 지름이랑(28.5m) 높이(57m)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1:2 비율로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껏 유럽 위주로만 가봤기에 모스크 방문은 처음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외려 성당이나 교회보다 보기가 편했다. 아무래도 서구권 종교 시설은 종교적인 상징으로 꽉꽉 채워져 있다 보니까 배경지식이 없는 상황에서는 뭐가 뭔지 알기가 힘든 반면, 모스크는 (이슬람이 우상숭배를 철저히 금하는지라) 기하학적 무늬와 식물적인 모티브로만 안을 꽉꽉 채워놨어야 했기에 의미 해석 같은 거 없이 맘 편히 안을 둘러볼 수가 있다. ​ 여유롭게 구경하다 밖을 나와 보니 친구한테 문자가 와 있었다. 이스탄불에 테러 났다는 데 별일 없냐고 하더라. 기사를 찾아보니 거리 사진이 어째 많이 낯이 익었다. 어젯밤에 돌아다녔던 탁심 뒤편 거리에서 폭탄이 터져서, 6명이 죽고 80여 명이 다쳤다는 얘기가 뒤따르더라. (본인이 Kikirik에서 아몬드 볶음밥을 먹고 있었던 시간대였다.) 행여나 그때 탁심 근처를 돌아다녔더라면 아마 지금 이 글을 쓰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테다. 뭐 굳이 얘기하자면, 탁심 지구를 아주 늦은 시간대에 갔던 것도 테러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보통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한 테러는 사람이 밀집한 장소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시간대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탁심은 아주 이르거나 늦은 시간대에 돌아다니기로 마음먹었었다. 실제로 테러가 오후 3-4시경에 일어났으니 본인의 판단이 적중한 셈. 군대에서 정보 했던 게 이럴 때 통하는구나! ​원래대로라면 배가 슬슬 출출할 시간대였겠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없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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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문제였다. 어차피 오후 6시가 넘었으니까 관광지를 더 보는 건 좀 힘들 테고, 그냥 모스크나 하나 더 보려는 심산으로 시내 외곽으로 향했다. 다름 아닌 셀림 모스크다. 쉴레이마니예 1세가 (방금 간 쉴레이마니예 모스크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거다) 본인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모스크로, 이스탄불에서 두 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모스크다. 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굳이 먼 거리를 돌아가서 볼 가치가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사실 셀리미예 모스크랑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렸었다. 셀리미예는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지은 미마르 시난마저 ‘쉴레이마니가 내 첫 작품이고, 셀리미예가 진짜 본인의 걸작이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오토만 건축의 정점에 있는 건물인데... 얘는 이스탄불이 아닌 다른 도시에 있다. 버스를 타고 나서야 본인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오기가 생겨서 그냥 가기로 했다.) 셀림을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교통 체증으로 가뜩이나 악명 높은 도시에서 오후 6-7시에 버스를 타는 건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기껏해야 10분이면 걸릴 거리를 가는데 반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다음은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아니, 사실 그건 문제도 아니었고, 동네 분위기가 조금은 무서웠었다. 시리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그런가, 튀르키예어보다 아랍어가 더 많이 들리는 것만 같았고, 주민들 옷차림도 딱 우리가 생각하는 중동 국가에 가까운 스타일이었다. 튀르키예가 아닌 중동의 한 마을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였다.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모스크까지 꿋꿋이 걸어갔었다. 이스탄불 시내와는 달리, 어째 사람들이 본인을 좀 더 빤히 쳐다보는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본인이 잘 생겨서 그런 거라고 정신승리를 해 본다. ​오르막길을 오른 보람이 있긴 하더라. 경치만큼은 끝내줬었다. ​​ 여기도 충분히 보는 맛이 있었다. 한데 여기는 진심으로 관광객들은 한 사람도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좀 들어가기가 미안해졌다. (그리고 쉴레이마니예랑은 다르게 여기는 입구가 베일로 가려져 있어서 더 망설여졌었던 것 같다.) 일단 들어가기는 들어갔는데, 다들 너무 경건한 자세로 있다 보니까 카메라는 들이대지 않고 그냥 감상만 하다가 조용히 나왔다. 이슬람이 사진 찍는데 좀 보수적이라는 얘기를 들은지라,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기로 했다. ​ 외려 동네가 너무 한적하다 보니까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그러나 그건 본인의 선입견에 불과했었다. 관광객들이 안 찾는 동네라서 그런가, 오렌지 주스를 8리라(𽘀원)에 팔고 있는 집이 보였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무선 이어폰이 떨어지자 옆에 있는 청년이 주워주기까지 했고. 말이 안 통할 뿐이지 여기도 그냥 사람 사는 동네였음. 언덕을 넘어가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한다. 이때가 저녁 7시 반이었다. ​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렇게 조용히 보낼 리는 없다. 잠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고 동선을 확정한 뒤 다시금 길을 나섰다. 첫 번째 행선지는 숙소 바로 앞에 있는 갈라타 탑. 무려 1348년에 세워진, 이스탄불의 명실상부한 대표 건축물 중 하나다. (이 지역에 탑이 있었다는 첫 기록은 비잔틴 시대 때 일이다. 1204년 십자군 원정 때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대를 거듭하면서 감옥, 소방 타워, 등대 등 다양한 목적으로 알차게 쓰여왔지만, 지금은 당연히 전망대 외의 특별한 목적은 없다. 야사 중에 하나로, 1638년 오토만 제국의 과학자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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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마드 첼레비라는 사람이 갈라타 타워 꼭대기에서 날개를 달고 뛰어내려 바다 건너편까지 비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만약 진짜라면 세계 최초의 대륙 간 비행이 될 수 있었을 테지만, 애초에 이 기록을 작성한 역사가가 허풍을 좀 잘 치는 걸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 탑의 높이는 대강 63m 정도로, 20층짜리 아파트와 비슷한 높이라고 보면 된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수십 초 만에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다. 고층건물이 들어선 현대 이스탄불에서도 갈라타 타워만큼 전망이 좋은 장소는 몇 없다 보니, 현지 커플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여전히 애용되는 듯. 다 타워에서 밀어버리고 싶었다 솔로천국 커플지옥!​ 엘리베이터를 통해 내려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냥 계단을 통해서 내려가는 방법도 있다. 이스탄불과 튀르키예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도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짬 내서 둘러보실 수 있다. 물론 본인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타임 어택. 계획은 이랬다. 바다 건너 Kadıköy로 향하는 9시 반 페리를 타서, Kadıköy에 9시 50분까지 도착한다. 항구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김민재 선수가 뛰었던 페네르바체 스타디움을 찍고, Moda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페리를 타러 12시까지 항구에 돌아오면 모든 게 딱딱 들어맞는다. ​ 5분만 더 일찍 갈라타 탑을 나왔었더라면 9시 배편도 가능했을 테지만,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었다. 페리가 출발할 때까지 마땅히 할 것도 없으니 Espressolab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2014년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카타르, 요르단, 이집트, 독일(!)까지 세를 불리고 있는 커피 체인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가게 안에 누가 봐도 새삥인 라마르조꼬 리네아 PB(매우 유명한 고급 에스프레소 머신이다)가 보여서 들어간 거다. 튀르키예에서 요 정도 머신을 쓰고 있다면 커피도 어느 정도 신경을 쓴다는 얘기일 테니까. 커피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저 그랬다. 별다방 이런데 보다는 낫지만 그렇게까지 인상 깊다고 얘기하기도 그렇고, 그냥 무난하다는 단어가 제일 적절할 것 같다. ​ 오늘 탄 페리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페리였다. 고전미가 넘쳐서 오히려 좋다. 바다를 건너서 간 MODA E****에서 케밥을 주문했다. Moda(=애초에 지역 이름이 ‘유행’이다. 이스탄불에서 나름 힙하고 젊은 구역으로 알려진 듯)에 와서 그런가, 어째 사람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더라. ​ 본인 또래 정도 되는 주인이 안 그래도 자기 맥주 따려던 중이었다고, 한잔할 생각 있냐고 물어봤다. 이슬람 문화권은 당연히 금주라고 생각해서 매우 의외의 제안이라 생각했는데, 튀르키예는 그렇게까지 음주에 보수적인 편은 아니라고 한다. 젊은 세대들은 특히 맥주 한 잔 정도는 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라고. 진짜 문제는 본인의 가게가 주류 판매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점인데, 괜찮으면 동으로 만든 잔에다가 맥주를 따라서 줘도 되겠냐고 하시더라. 행여나 누가 뭐라고 하면 ‘이거 차인데요? 찻잔에 담았으니까 차죠. 뭐가 문제임?’ 같은 식으로 발뺌할 생각이라고. 맞다. 튀르키예에 왔으면서, 정작 튀르키예 최대 수출품인 케밥을 먹지 않았었다. 물론 그냥 되네르 케밥을 먹는 건 좀 자존심이 상했기에, 이스켄데르 케밥을 시켰었다. 밑에다가 빵을 깔고 토마토소스를 부은 뒤 되네르 케밥과 (우리가 아는, 꼬챙이에 구운 고기다) 요구르트를 곁들이는 음식이다. ​음식이 나올 때쯤 되면 밑에 깔린 빵이 토마토소스와 버터를 흡수해서 눅눅해진다.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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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이태원에서 시키는 케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일단 빵, 고기, 요구르트 등 그냥 개별 식재료가 모두 다 한 수 위였다. 맛의 측면에서 봤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버터가 아끼지 않고 들어간다는 점? 1) 토마토소스에 무게감을 더해줄 뿐 아니라 (상큼하고 톡톡 튀는 게 아닌, 묵직한 감칠맛에 가깝다), 2) 아래에 깔린 빵이 버터를 흡수해서 보다 부들부들해진다. 수제 버거 만들 때 번에다가 버터 바르는 거랑 같은 맥락이다. 맛도, 영양도 완벽한 한 끼였다. 가게가 페네르바체 구역에 위치해서 그런지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페네르바체 팬이었다. (그래서 맥주를 공짜로 얻어마셨던 거다.) 요새 김민재 선수 때문에 동네에 한국인이 종종 보인다고, 오늘 점심에도 한국인이 한 명 왔다 갔더라고 하더라. - 한국과 마찬가지로 튀르키예 축구팬들 역시 해외파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해외 리그를 더 자주 챙겨 본다고 했다. - 튀르키예 같은 경우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이탈리아에서 뛰고 있기에 세리에 A의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그러기에 김민재가 나폴리 주전인 것도 아주 잘 알고 있더라. - 현재 자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선수는 대표팀 주장 찰하노글루(인터밀란), 가장 주목하는 유망주는 카바크(호펜하임)과 귈러(페네르바체)라고 한다. 특히 귈러는 2005년생인데도 벌써 페네르바체 주전으로 나오고 있어서 조만간 메가 클럽 이적이 유력하다고.- 튀르키예도 선수진 면면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으나 월드컵 플레이오프에서 포르투갈에 1-3로 패배해 간발의 차로 본선을 밟지 못하게 되었다. 제발 포르투갈 좀 눌러달라고 얘기하더라. ​ 페네르바체 홈구장까지 내리 20분을 걸어갔다. 이미 오후 10시가 넘어가는 시간대라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만, 그래도 열려 있는 가게들 면면을 보니 왜 모다가 현지인들한테 인기 있는 동네인지 대강은 알 수 있겠더라. ​​성지순례 완료!김민재 선수가 한 시즌을 뛰었던 페네르바체 홈구장. 어차피 성지 순례하는 겸 해서 온 거라 큰 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어느 나라를 가든지 간에 해외에서 성공을 일궈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 매력적인 도시에서 팬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1년을 지냈다면 김민재 선수 입장에서도 페네르바체가 괜찮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튀르키예의 국부 아타튀르크도(왼쪽 사진) 페네르바체의 열성 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페네르바체라는 팀 자체가 초급 장교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팀이었다. 페네르바체의 최대 라이벌 갈라타사라이는 오스만 제국의 귀족들이 창단한 팀이었고. (눈치챘겠지만, 갈라타 타워에서 이름을 땄다.) 군 경력을 살려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아타튀르크가 페네르바체를 지지하고 갈라타사라이를 증오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둘은 유럽 축구에서도 손꼽는 앙숙 관계이다. ?????페네르바체 홈구장 뒤편을 보니 바다를 끼고 걷기 좋게 산책길이 펼쳐져 있었다.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 떠는, 생각보다도 건전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이스탄불 판 한강시민공원 같은 느낌? 유감스럽게도 한강시민공원과는 달리 화장실 시설은 부실한 편이다. 나무 뒤 으슥한 곳에서 볼 일을 보는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요거는 그냥 가게 디스플레이 때문에... 원래는 Moda에 있는 Dondurmoda(오른쪽 사진)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했으나, 1시까지 장사한다는 구 모 씨의 증언과는 달리 가게는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그냥 근처에 있는 체인점 Ali Usta.에서 돈두르마를 먹기로 한다. 그 김에 화장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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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들르고. 상당히 공격적인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게 있긴 하다. ​ 레몬, 피스타치오, 그리고 호두 돈두르마를 시켰다. 첫날 먹었던 돈두르마보다는 조금 못 한 맛이긴 했다. (Hevlaci Ali에서 먹은 돈두르마가 덜 달고, 우유 맛이 진했다.) 그래도 모든 체인점이 그렇듯이, ‘못해도 평타는 친다’. 기본적으로 돈두르마에 우유가 들어가는 만큼, 과일보다는 견과류 돈두르마가 성공 확률이 확실히 높았다. 위 단락에 ‘타임 어택’이라고 적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케밥 가게에서 페네르바체 구장까지 20분, 구장에서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30분을 꼬박 걸었었으니, 예상보다도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시계를 보니 17분 후에 Karaköy로 가는 페리가 출발하더라. 구글 曰,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항구까지는, 도보로 18분 (1.6km) 거리였다. 뭐 이론상으로는 쿨하게 자정이 아닌 12시 30분 페리를 타면 되긴 했지만... 알 수 없는 승부욕이 발생해서 12시 페리를 타기로 했다. 처음 보는 길인데다가 내리막 구간이 있긴 했지만, 적당히 뛰니까 12분 만에 무난히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볍게 땀을 흘리고 나니 바닷바람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스탄불 시민들에게는 평범하지 그지없는 일상이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게 로맨틱해 보였다. ​ 오전 12시 반의 Karaköy. 새벽까지 페리가 다녀서 그런지 항구에 붙어 있는 가게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원래는 항구 근처의 Beyzade에서 디저트라도 하나 더 집어먹고 갈까 했으나 (요기 근데 친절하고 맛있다고 칭찬이 자자하더라. 조금 더 정돈된 스타일의 여행을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추천한다), 달달한 건 어째 물릴 것 같아서 그냥 오렌지 주스나 한 잔 마시고 숙소로 올라갔다. 이스탄불의 마지막 밤인 만큼 숙소를 지키던 Sardar와도 작별 인사를 나눴다. 어째 튀르키예 사람치고는 이름이 독특하다 싶어서 어디 사람인지 물어봤는데,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왔다고 하더라. 친구 아버지가 외교관으로 일한 적이 있는 동네기에 그나마 주서들은 걸 몇 개 말했는데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냐고 신기해했었다. (=북한 급으로 폐쇄적인 국가라 외지인들도 안 가고, 주민들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드물다. 지도자가 독재자인데, 이 사람이 병적으로 흰색을 좋아하다 보니 수도에 있는 건물들이 전부 다 흰색으로 도색되었을 정도다. 사실 본인도 친구가 아니었으면 들어볼 리 없는 TMI들.) 이 친구도 제로-코로나 정책 때문에 몇 년째 귀국길이 막힌 상태라던데, 뭐 그것과는 별개로 투르크메니스탄은 할 일도 없어서 집이 그렇게 그립지는 않다고 한다. 한데 요새는 튀르키예 화폐가 무너지고 있는 데다가 이스탄불 물가도 급속도로 올라가다 보니, 하루빨리 대학을 졸업해서 탈-이스탄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나 보다. 한국 생활은 어떻냐고, 돈은 잘 주냐고 해서 뭐 임금 수준은 어떤지 (=튀르키예 공식 최저시급이 대강 월 60만 원이다),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은 있는지, 무슨 산업이 있는지 그런 얘기들을 했던 것 같다. 자기 여자친구가 K-pop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에도 관심이 생겨버렸다고.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3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인스타그램 주소를 공유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만 대충 닦고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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