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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공고
고객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발전하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당사는 시스템, 네트워크, DBMS, 보안 및 통합유지보수를 전문으로 하고
IT 서비시즈 전문기업
으로써 아래와 같이 해당 분야의 전문 인력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수시모집요강
모집부문 인원 내용
영업부문 0명
  • 시스템, 스토리지, 네트워크 관련 영업 경력 만 1년 이상자.
엔지니어 0명
  • 유닉스 시스템, 스토리지 하드웨어 관련 경력 만 1년 이상자.
  • DB관련, 보안 관련 기술지원 경력 만 1년 이상자.
  • 네트워크 설치 및 유지보수 경력 만 1년 이상자.
관리부문 0명
  • 마케팅, 경영지원 관련 신입 또는 경력.
지원절차
recruit_1.jpg
  • 입사지원서(Application Form) 작성 후 On-line 제출 (liy@bminfotech.co.kr)
  • 1차 서류심사 통과 후 면접일 개별 통보
  • 2차 면접 실시 (경우에 따라 추가 면접이 있을 수 있습니다.)
  • 3차 건강검진 및 결격여부 판정
  • 최종 합격 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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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 홍보 사이트 권윤석입니다. ​ 이 문서는! 앞서 올린 4편의 게시글들과 매한가지로, 본인이 지난 2021년 11월에 쓴 ;에 수록한 내용들로서! ​ 본인 권윤석에 대한 소개와 본인 권윤석의 프로필과, 성장배경에 대한 간단한 설명 및 정규교육 수료와 군 복무의 완수 사실 + 본인이 영화작가로 일해온 이력사항들 + (그리고! 그동안 거듭거듭 공언해온 대로!) 본인이 2006년부터 2013년까지, 그리고, 2014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각각 국내외 영화계와 방송계 및 동서양의 온 세계로부터 주목과 감시를 받는 가운데! 본인을 염탐한 국내외 동서양의 영화계와 방송계와 문학계가 만든 수백편의 작품들 중 대표작들을 명시한 내용입니다. ​ 그동안 거듭거듭 언급했듯이! 본인 몰래 본인의 모든 삶을 필사적으로 염탐, 조사, 왜곡하면서, 온갖 저능한 모함들과 왜곡수작들을 해대는 국내외 지배층들과 이들 휘하의 전문가 그룹들 및 이들과 연동하거나 별개인 군중과 청년들은, 본인의 노트북 속 파일들이 2009년에 만든 것으로 돼있는 (삼성 측이 만든 원인불명의) 오류문제를 갖고서, 본인이 스스로 영화작가로 다년간 활동해왔다고 믿는 정신병자나, 악질적인 사기꾼으로 모는 모함 수작을, 본인 몰래, 지난 10년 가까이 해오고 있는 바입니다. ​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김삼진이나 박진영 등, 국내외 정, 재계 지배층들과 첩보기관들과 수사기관들 및 법조계에 빌붙은 본인의 지인들로서, 일자무식이거나 본인을 철저히 모방했던 (그러나 자신만의 특기나 색채도 없었던) 자들, 심지어는, 본인과 잠시 교류했던 여장남자 세계의 어린애들까지 나와서, 죄다 자신들이 본인의 스승들이라거나, 본인이 망상을 한다는 수작들을 (본인 몰래)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 고로! 이 문서를 통해서도, 본인의 프로필과 이력사항 및 영화작가로서의 활동경력과, 본인으로 인해 지난 20년 가까이 탄생한 국내외 동서양의 수많은 영화들과 드라마들 및 소설들의 면면을 확인하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 참고로! 본인은, 그동안 거듭거듭 언급한 대로, 본인의 영화작가 활동 이력 문제에 대한, 국내외의 (특히, 한국인들의) 저능한 왜곡질들에 대응하여, 본인이 계약체결했던 영화와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들의 계약서들을 (2018년에!) 본인의 아이폰으로 촬영하여 증거들로 마련해둔 바&quot있습니다. ​ 그러나! 그동안 거듭거듭 강조한 대로, 본인의 영화작가 활동 이력은, 본인의 계약서들 외에도! 본인의 원고(시놉시스, 스토리, 시나리오) 전송기록들, 본인과 제작사 측의 전화통화 내용들과, 문자 메시지 송수신 기록들 및 전자메일 송수신 기록들, 본인이 집필했던 프로젝트들에 관련된 (시네 21 등의) 영화잡지들의 관련 기사들, (그 밖의) 제작사들이 본인에게 보낸 몇몇 편지들의 존재들로, 분명히 사실들로서 존재한다고, 확언하는 바입니다. ​ 여기서 본인이 본인의 삶에 대해서 (일부나마) 구체적으로 쓴 것은! (그동안 거듭거듭 언급한 대로!) 본인의 모든 삶과 일거수일투족을, 국내외의 여러 세력들과 지배층들 및 감시세력들이, 군중과 더불어 몰래 조사하고서 왜곡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박들을 위한 설명들로 쓴 것입니다. 이 사실 또한 감안하시기를, 만인께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본인 삶에 대한 (몰래 해대는 방식의) 왜곡 및 은폐와 부정 수작질을 통해서도! 즉, 이 문제를 통해서도, 지금 이 21세기 세상의 진정한 실체와 현주소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 다음부터가, 본인이 지난 2021년 11월에 쓴 ;에 수록한, 본인의 소개 + 프로필 + 영화작가로서의 활동 이력사항들 + 본인으로 인하여 탄생한 국내외와 동서양의 작품들에 대한 설명들입니다. 온 세계의 남녀노소 여러분들께서는, 이 글을 분명하게 확인하십시오! - ​​​ ​​ 저는, 작가 권윤석입니다. ​ 이 소개의 장(章)을 통해서, 문피아 여러분께 이렇게 정식이자 처음으로 인사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 저는, 한국 나이로 50세의 남성이며,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시나리오를 창작, 집필하는 작가이자, 영화평론이나 칼럼들을 쓰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합니다. 저는, 또한, 사단법인 한국 시나리오 작가협회 소속의 영화작가이자, 영화인입니다. 저는, 아홉 살 시절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서 성장해서, 역사와 전쟁사와 신화, 미스테리, 무기, SF 등의 분야들을 탐구하며 살아왔고, 중학생 공모전 홍보 사이트 시절부터 습작 역사소설들과 SF소설들 및 역사책들을 만들었으며, 고교시절에는 연극부에서 배우와 연출자로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드린 대로, 저는 창조를 하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일관되게 갖고 있었으나, 신춘문예 당락과 사소설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문학계의 모습에 실망하여, 고교시절부터는 (계속 습작소설들 창작과 역사분석 작업 및 연극부 활동에 주력했으되) 작가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하지는 않았던 바 있습니다. ​저는 학업에 미련을 두지 않았기에, 늦게서야 대학에 진학했고, 군대 전역 후에, “TV와 영화 분야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서, 역사학과로 편입을 하여, 제가 줄곧 좋아했고 탐구해온 역사를 공부하고서 졸업한 다음, ‘사단법인 한국 시나리오 작가협회 부설 영상작가교육원’에서 2년 과정의 수업을 마치고서,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영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의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래 꿈이었던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장르문학도 뽑는 언론사들의 소설공모전에 응모도 하되, “인터넷으로 직접 독자들과 만나는 웹소설”을 쓰기로 계획하여, 여러 준비들을 한 바 있습니다. 즉, 그동안 여러 경로들로 거듭거듭 언급했듯이, “영화 일을 평생 해나가되, 이와 병행해서, 매일매일 창작하는 웹소설을 집필, 창작해, 인터넷 연재로 완결을 지어, 영화와 애니메이션이나 TV드라마의 원작이 되는 작품들을 창작해나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작가 일이란 것이, 정식계약으로 집필을 해서 시놉시스 줄거리 단계부터 스토리를 거쳐 장편 시나리오까지 완성해 다수에게 호평을 받고서도 별의별 어이없는 이유들로 프로젝트들이 무산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은 직업이기에, 그렇게 운에 좌우되는 일에만 평생 몰두하고 있기보다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매일매일 창작해서 차근차근 가시적인 성과들(작품 완성)을 이뤄내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플랫폼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1990년대 초반의 PC통신 소설연재 시절에 시작됐던 “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인터넷 소설의 세계”가 변화해, 1990년대 후반에 인터넷 연재를 통한 판타지 소설들이 범람하다가 공멸하고, 이후 2000년경부터 “무료연재의 인터넷 소설연재+소설 출판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한국 인터넷 소설의 실상을 보고, 또, 공염불 외우는 수준의 사소설들로 가득 찬 (소위, 자칭) 한국 순문학계의 자중지란을 보며, 많은 씁쓸함을 느꼈던 바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과정들을 통해서, 2013년 이후로는 귀사 문피아 때문에 “장편 웹소설 창작과 집필 및 연재를 주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선, 별도의 장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귀사 “문피아”에서 제 소설을 유료연재해서, 조(兆) 단위의 거금(약 11조 수천억원)을 수익창출 하고자 합니다. 이건, “동서양 온세계가 여러 이유들로 저 권윤석을 주시하고 있으며, 제가 웹소설 유료연재를 통해서 수익창출을 이루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선, 귀사 문피아 측에서도 잘 알고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제가 저렇게 말씀드린 구체적인 까닭과 과정 및 가능성에 대해선, 7장(;)에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 다음은! 본인이 이 문서에 쓴 본의 프로필 및 이력사항들입니다! - ​​​​ ; 권윤석. 1972년 서울 출생. ​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사단법인 한국 시나리오 작가협회 정회원.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스토리와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자, 영화 칼럼니스트. 한국형 역사활극, 첩보물, 군사물, 형사물 장르, 공포물과 미스테리 장르, 서양 고대나 중세 배경의 역사극 및 판타지 작품들, 동서양을 아우르는 SF 장르를 창작하는 일에 주력해오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유년시절부터 역사와 신화, SF(Science Fiction), 전쟁사, 군사, 무기, 첩보, 과학, 심리학, 샤머니즘, 영화 분야들을 개인적으로 탐구해오고 있습니다. 1972년 10월 5일. 서울시 용산구 출생. 1985년 2월. 서울시 학동초등학교 졸업1988년 2월. 서울시 언주중학교 졸업1991년 2월. 서울시 영동고등학교 졸업 영동고교 연극반 1기 (* 1989년에 부활한 1기)로 활동했으며, 1989년, KBS 성우팀과 사극 의상팀이 협조한, 통일신라 시대 배경의 사극 연극 ;에서, 주인공 범종 장인 역으로 출연. 1990년, 남녀 혼성 출연의 청소년 연극 공동연출! 1993년 2월. 피어선대학교(現 평택대) 경영학과 입학 1995년 7월 공모전 홍보 사이트 29일. ( 1994년 1월 10일 ~ 1995년 7월 29일, 19개월 복무! )육군 보병 제 205연대 1대대 본부중대의 선임 지휘관으로서, “전투방위로 불렸던 2개의 보병 연대(203, 205연대) 중 205연대에서 단기사병 전투병”으로 전역! ( 주특기는 소총수, 임무는 해머병이자 탄약병 및 분대장과 중대 선임 지휘관이자, 화생방 교육담당 조교로서, 생화학 무기의 종류들과 특징들에 대한 설명과 대처법 및 방독면 착용법을 강의했습니다. 병가 기간 포함, 전투방위로 19개월 만기전역! ) → 이 군 관련 설명을 상세히 명시한 이유는, 제가 미필자이며 탈영병이었고,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집총과 사격을 거부했으며, 전투원과 무관한 취사병이었다는 식의 거짓왜곡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 문제와 별개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 분들은, 2014년 이후로, 제게 많은 도움들을 줬고,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저는 저 분들에게 분명히 보답을 할 것입니다. 1997년 2월. 서울시 한성대학교 사학과, 3학년 편입학. 1999년 2월. 서울시 한성대학교 사학과 졸업. ( 피어선대(現 평택대) 경영학과를 2학년까지 다니고, 이 한성대의 사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으나, 한성대 4년제 졸업을 위한 모든 과목들을 이수했고, 한성대 사학과의 “제 1회 졸업논문 발표회”에서 ;의 논문으로 심사를 통과해, 정상적으로 졸업! ) ​→ 이 학력문제 설명을 굳이 한 이유는, 제가 무슨 특혜를 얻어서 부정으로 편입을 했다거나, 편입생이었기에 4년제 대학에서 반쪽짜리로 2년만 다니고서 허투루 역사를 배웠다는 식의 왜곡들과 모함들이, 기정사실마냥 세계에서 들끓기 때문입니다. ​→ 저는, 한성대 사학과 편입학 및 졸업과 관계없이, 유년시절부터 역사를 탐구해왔고, 대대로 역사학을 전공한 조부나 부친과 별개로, 저들의 권고나 강요없이 (저들은 오히려 극구 만류했습니다) 제 독자적인 자유의지로 역사를 탐구해 왔습니다. ​1999년 1월 ~ 2000년 12월. 사단법인 한국 시나리오 작가협회 부설 “영상작가 교육원”의 2년 과정(기초반-전문반-연구반-창작반) 수료. 2000년 6월 ~ 9월. 2000년 10월 개봉작 영화 ;의 애니메이션 스토리 공동집필! → 영화작가이자 드라마작가이며, 당시 영상작가교육원의 연구반 담당 지도작가였으며, 前 작가협회장으로, 현재, ‘한국 영화인 총연합회장’인 지상학 작가의 제안을 받아, 함께 공동집필했으나, 전체 스토리의 구성과 창작은 혼자서 주도했습니다. 2000년 7월. 영상작가 그룹 시네마루 (본인, 신윤경, 박진영) 창설. 2000년 7월~ 12월. KM컬처의 영화작가팀 운영 실험과정에 동료 4인과 한 팀으로, 5개월간 참여. → 잠원동의 KM 소유 작업실 건물에서 자유로이 지내면서, KM컬처가 수입을 고려 중인 외화들에 대한 감상과 분석 및 회의, 저예산이나 고예산용 영화 스토리들 제출 및 회의를 했고, 이 과정을 여성 대리(PD가 된 이지원)가 관찰, 분석, 기록한 과정이었습니다. ( 당시 KM측 – 방추성, 류은숙, 박은미, 이지원 ) → 저를 필사적으로 폄하하는 국내외의 여려 세력들이나 영화PD들은, 저의 이 설명에 대해서도, 제가 영화계에서 훈련받은 자라는 왜곡과 폄하를 해댈 것입니다. → 저는, “영화계 현실을 모르고서, 혼자만의 창작을 한다”거나, “경제활동이나 직업 활동없이 집에서만 40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나 “영화사들의 시스템을 모르는 자다”라는 왜곡들을 반박하기 위해서, 이 언급을 굳이 한 것입니다. ​2000년 11월. 영화진흥위원회 주최 “제 2회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한국의 청동기시대 배경, 한국형 판타지 서사시 ;으로 본선 진출. 2001년 1월 1일 ~ 4월 30일. (회사와의 집필 시작은, 2000년 12월 30일!) 디지털 드림 스튜디오 제작, 3D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의 스토리들과 초고 시나리오(시네마루 버전)를 정식계약해서 시네마루 작가팀으로서 공동집필했고, 이를 통해서, “윌리암 모리스 社”로부터의 투자를 이끌어냈습니다. ​( * 스토리 정식계약은 2001년 2월 26일. 시나리오 정식계약은 2001년 3월! ) ​​2001년 5월. 한겨레의 “씨네 21” 및 한석규 형제가 10년(1999~2008)간 공동주최했던,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풍자극 ;으로 본선 진출. ​→ 이를 계기로, 2002년 1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약 4년간, 이 공모전을 한겨레와 공동주최했던 한석규 형제의 공모전 홍보 사이트 영화사 힘-모션 픽쳐스에서 여러 스토리들과 시나리오를 계약 또는 계약없이 (선금 입금받고서) 집필했습니다. ​→ 이 내용(요괴주점, 본호선 진출)이, 당시 씨네-21 기사에 실렸던 바 있습니다. ​→ 제 노트북엔 이 ;이 2006년의 창작물로 기록돼있어, 이 문제로 제가 망상증 환자나 사기꾼이란 모함들을 받아 왔습니다. 이 “사실(본선 진출)”을 통해서, 컴퓨터의 원인불명 기록오류들이 실존한다는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2001년 5월 ~ 8월. 한지승, 배형준 감독의 영화사 시선(Seasun / 당시, 장충동 소재)에서, 제목 미정의 멜로영화 스토리를 정식계약 공동집필! (시네마루 작가팀) 2001년 5월~ 11월. 기획시대 제작 스토리 정식계약 단독집필. 당시, 유동훈 작가협회장의 적극 추천으로 기획시대와 만났으나, 저의 스토리 제안서와 역사지식에 만족한 기획시대가 대표가 계약을 한 것임. ( 이 프로젝트의 제작소식이, 2001년 가을, 씨네21 영화잡지에 실렸던 바 있음! ) 2002년 7월~ 8월. 기획시대 제작 장편 시나리오 정식계약 단독집필. ​ 2002년 1월, 7월~ 9월. 막동이 공모전을 한겨레의 “씨네 21”과 공동주최했던 한석규 형제의 영화사 “힘-모션 픽쳐스”에서, 스토리 공동집필 → 1월의 정식계약 및 계약금(6백만원) 입금 확인 후, 본인이 계약파기 + 이후, 7월에 3백만원 입금받고서 스토리 작업 참여! 제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저를 비방, 폄하하는 한선규, 민병선 등의 거짓말드를 불신하십시오. 2002년 11월. 영화진흥위원회 주최 제 4회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해양-SF 스릴러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로 우수상 수상. ( 권윤석, 신윤경 공동집필 )→ 이 수상소식에 대한 당시의 언론보도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습니다. 2002년 10월~ 2003년 3월. 기획시대 제작, 호스트물 멜러극 각색 정식계약 단독집필. ( * 이 ;은 원작자인 박정훈 감독의 작품으로 2009년 10월에 극장개봉 됐으나, 이 극장개봉 버전과 ‘본인의 이 당시 각색 버전’은 무관함! ) 2002년 12월~ 2003년 6월.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비밀 첩보원 배태랑(裵太郞)의 활약을 그린, 오리지널 창작 캐릭터 스토리 스토리(트리트먼트)들 창작, 집필. ( 기획시대 출신 이은실PD가, 본인의 창작을 보조, 협력하며, 판매를 담당! ) 2003년 3월. 사단법인 한국 시나리오 작가협회 정회원 등록. 2003년 12월 ~ 2005년 4월. 별천지(영화사 겸 매니지먼트 회사(별모아))와 정식계약해,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비밀첩보원 이야기 시나리오 단독집필! ( * 이 각본과 주인공 이름 및 제목은, 2005년 10월(내용증명 발송)부터 2007년 9월까지 진행된 저작권분쟁 재판을 통해, 본인이 승소하여 저작권 보유! → 이 프로젝트의 스토리 작업에서 본인을 보조했고 판매를 담당했던 이은실PD가, 본인의 동의없이 별천지 영화사에 이 스토리를 판매했기에, 이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던 중, 차일피일 영화제작을 미루며 딴전을 부리던 별천지 영화사가 폐업한 후, 이곳에서 공금횡령문제로 축출됐었던 김삼진PD가, 본인에게 사소한 앙심을 품고서, 창작자인 본인의 동의없이, 본인이 만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새 영화사를 만들고선 그곳 대표(박광춘)에게 별천지에게서 본인의 시나리오를 구입하게 한 후, 본인 몰래 이 영화를 본인의 시나리오대로 제작하고 있음을 적발하여, 적법한 절차에 따라, 햇수로 3년간 저작권분쟁 재판을 해서, 승소한 것입니다! ) 2005년 7~8월. 마리 엔터테인먼트(종로학원이 만든 제작사, 당시 서강대 근처 소재) 제작, 가족용 뮤지컬 정식계약 단독집필, 오리지널로 창작! → 이 극은 언론에 가족용 뮤지컬이라고 소개됐으나, 실제로는 음악과 춤이 많이 가미된, 어린이용 연극임! 2004년 10월~ 2005년 10월. 한석규 형제의 제작사 힘-모션 픽쳐스에서, 신라의 조신설화(+ 이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1960년대의 신상옥 감독 작품과 1990년 배창호 감독 작품의 두 동명영화 ;를 단독집필. ​→ 선금 7백만원을 먼저 입금 확인한 다음, 정식계약하기로 했으나, 제작사 대표(한선규)와의 계약여부에 대한 1년간의 지지부진한 의견충돌로 다투다, 계약무산! 이 각본은 본인이 정식으로 저작권등록을 하여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 이 작품의 영화제작을 위한 시나리오 집필 소식이, 2005년 초 무렵에 한겨레의 영화잡지 공모전 홍보 사이트 “씨네 21”의 “한석규 인터뷰 기사”에 실린 바 있습니다. ​ 2005년 11월~ 12월. 앞서 언급한, 가족용 뮤지컬 ;이, 서울의 한국 방송회관, 부천의 공연 전용 극장에서 공연됨. 2005년 11월~ 2008년 5월. 사단법인 한국 시나리오 작가협회가 웹진 형식으로 운영하며, 30명 가량의 필진들을 곳곳에서 선발해, 최신영화 칼럼들과 영화계 뉴스들 및 각 분야 전문가들의 동영상 강의들을 연재했던 “무비글닷컴 사이트”에서, 최신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들 중심으로, 영화장르론을 포함한 여러 편의 영화칼럼들을 ;를 4회까지 연재했습니다. ​→ 이 ;가 만들어져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것입니다. ​ 2006년 2월~ 9월. 국제 애니메이션 협회장이었던 넬슨신의 코아필름(에이콤)이 KBS와 공동 제작한, 남북합작의 TV용 39부작 역사활극 애니메이션 시리즈 ;의 전체 시나리오를 정식계약으로 단독집필! → 故 유동훈 작가협회장의 추천으로 넬슨신 측과 만났으나, 넬슨과 회사가 본인의 제안서와 스토리들을 호평, 신뢰했기에, 저와 계약체결을 한 것입니다. ​2006년 5월. 이 작품의 설명 및 논의를 위해, 평양 지도부의 공식 초청장을 받아, 평양 방문! ​→ 본인의 전체 스토리와 3회까지의 시나리오를 읽은 평양 지도부가, 본인에게 “VIP 공식초청장”을 보내서 초청한 것입니다. ​→ 이 당시의 평양방문은, 본인, 넬슨신 회장, (자문역이었으나 창작엔 관여하지 못 했던) 김용만 역사학자, 신회장의 비서이자 PD인 이지연 차장, 이렇게 4인이, 한국에서 국정원의 심사를 받고서 북경을 경유해 평양을 방문하고 환대받고서 귀국했습니다. 이에 대한 본인의 비행기록이 없는 건, 넬슨신 회장이 자신의 이름으로 4인의 비행기 삯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 2006년 11월. 서울시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열렸던 ;에 질문자로 참여! 2006년 11월~ 2007년 3월. ​앞서 언급한, 사단법인 한국 시나리오 작가협회가 웹진으로 운영했던 “무비글닷컴” 사이트의 편집장 자리를, 故 유동훈 작가협회장으로부터 제안받아, 제안서들을 작성해, 작가협회장과 부협회장(최석호) 및 작가협회 사무국 등과 더불어서, “팀 결성과 구성 및 팀원들과 필진에 대한 보수지급 문제” 등으로 작가협회와 수개월간 논의했는데, 원로들 중심의 작가협회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 이후, 2008년 5월경에, 이 무비글닷컴 사이트는, 작가교육원의 홍보 및 등록 사이트로 기습적으로 개편됐고, 작가협회 측이 이곳의 게시글들 대부분을 삭제했으나, 본인은 이를 미리 감지하고서 본인의 게시글들을 본인의 블로그에 저장해뒀습니다. → 이 설명을 한 이유는, 2006년 이후로 당시 하루-방문객들이 수천명 단위로 치달으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이 사이트의 존재가, 작가협회의 악의(작가협회에서의 주도권 상실을 우려했던 원로작가들의 반발)로 기존의 게시글들이 완전히 사라져 홍보 사이트로 전락했는데, 본인이 2015년에 재회했던 작가협회 측도 당시의 일들을 부인함은 물론, 작가협회 안팎에서 이 사실을 아는 자들과 모르는 자들이, 여러 기득권들에게 이 문제로도 본인을 망상증 환자라고 왜곡, 모함했기 때문입니다. ​ 2007년 9월. 별천지 영화사와의 관련 저작권 분쟁 2심에서, 민사, 형사 상으로 본인이 최종 승소! 이 작품의 저작권 보유! 2007년 11월. 넬슨신 회장과 코아필름(에이콤) 측이, ;를 포기하는 대신에, 본인에게 제안했던, 영미권 수출용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정식계약 단독집필 제안을, 본인이 거절! 2007년 11월~ 2011년 6월. 웹소설과 장편 소설의 집필을 위한 자료준비와 구상, 집필을 위해 은둔! 2011년 6월 30일~ 2012년 3월 31일. 와이즈베이(영화광고 대행사 데이브 컴퍼니(정진기 대표)의 자회사)와 시네-주(영화PD들의 기획회사)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정식계약으로 단독집필. ​그 결과, 오리지널 시나리오 단독 창작, 집필! (2012. 3.12.) → 정진기의 제작중단 관련 갈등 문제로, 이 각본의 저작권은 제가 갖고 있습니다. 2013년 3월~ 10월. 와이즈베이와 데이브 컴퍼니의 대표였던 정진기가, PD를 영입해서 새로 만든 영화사에서 본인에게, 본인의 ;의 영화화를 제안했으나, 계약체결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이 결여된 상대 측과의 갈등 후, 본인이 서면을 통해서 거절했음. 2015년 4월~ 11월. 문상훈 작가협회장의 주도로, 사단법인 한국시나리오 작가협회가 발간한 계간지 ;의 창간호 (6월)와 2호 (12월)에, 공모전 홍보 사이트 당시의 최신 화제작 한국영화들이던 의 영화평론들을 집필, 게재! → 이 작가협회의 계간지 ;는, 2015년에 대형서점들에서 판매됨과 동시에, 서울 소재의 대학 영화과들에도 배포됐습니다. 2015년 4월~ 12월. 사단법인 한국 시나리오 작가협회로부터, 작가협회 60년 역사상 최초로 창간한 계간지(;)의 편집장을 맡아줄 것을, 문상훈 작가협회장과 이사진의 정대성 작가 및 사무국으로부터 제안 받았으나, “팀 결성과 구성 및 보수 지급과 지원문제 + 내, 외부 필진에 대한 보수지급에 대한 문제들”로 갈등과 설득을 거듭하다가, 작가협회 측의 반대가 거듭되어, 이 계간지 관련 일에서 손을 뗐음. 그 이후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본인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작가협회의 무비글닷컴 사이트에 쓴 영화칼럼들과 영화용 소설 및 (2008년부터) 개인 블로그에 쓴 게시글들과, 2009년부터 인터넷에 쓴 뉴스용 댓글들이나 영화평 댓글들을 집착하며 염탐하던 한국 영화계와 방송계(KBS, MBC, SBS, CJ 계열 채널들)가, 여러 영화들과 프로그램들을 만든 바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국내와 해외에서 대성공하거나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 그리고, 영미국에서도 본인의 존재를 알아내 본인의 각본을 바탕삼아서 작품들을 만들어 (또는, 기존에 존재했던 프로그램들이 본인의 인터넷 발언들이나 게시글들을 바탕삼아 제작되는 방향으로 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바 있습니다. 그 작품들은 매우 많은데, 그 중 몇 작품들만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타 등등. 앞서의 사항들에서 설명드린 대로, 2014년 2월부터, 2021년 11월 현재까지, 앞서의 “본인에 대한 집착과 염탐 및 추종과 모방의 물결”이, 여러 이유들(* 영화계와 방송계의 입소문들, 정치적 문제, 재계와 금융계의 주목, 수사기관들 및 정보기관들의 표적사냥, 본인을 천재나 예언자로 본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의 물결 등등)로 인해서 “동서양 온 세계의 주시와 감시”로까지 이어져서, 본인이 노트북에 저장해둔 ‘완성과 미완성의 창작물들’ 및 본인이 영화사들로 전송했던 각본들과, 인터넷에 써둔 블로그의 게시글들 및 영화평 댓글들과 뉴스용 댓글들, 그리고,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수집된 본인의 삶과 가족사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8년간 동서양(영미국, 중남미, 유럽, 인도, 일본, 중국, 러시아, 터키, 동남아 등)에서 수백편의 영화들과 TV드라마들과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져 대성공을 거두거나 큰 인기와 화제를 얻은 바 있습니다. 그 작품들은, 앞서 “2007~2013년의 기간”과는 비교불가일 정도로 무수히 많은데, 그 중 대략적인 작품들(2015~ 2021)만 일부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타 등등! 2014년 9월 1일에, 조선일보와 KBS 등이 공동주최한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 응모했던 본인의 TV 시리즈용 장편 역사활극 스토리 ;이, 여러 경로들을 통해 동서양의 전 세계로 전파되어, 이후로, 를 비롯한 수많은 동서양 영화들과 TV 드라마들의 제작의 바탕이 된 바 있습니다. 또한, 2019년 10월, 당시 미국 트럼프 정부의 지시로, 영미국 정부 및 영미국의 특수부대들과 더불어 저를 감시 중인 델타포스가, 테러조직 두목, ‘아부 바크르 알바그라디’를 제거했던 ‘케일라 뮬러 작전’에서, 저의 이 ;에 등장한 내용을 그대로 모방해서 적진진입과 임무완수를 한 바 있습니다. → 이건, 2014년부터 영미국 지배층들과 함께 저를 호평하며 주시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 테러 혐의로 저를 감시 중인 델타포스가, 제가 제 창작물들에서 창작하거나 동서고금 역사에서 인용한 군사작전들을 좋아하여 이를 자신들의 작전에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 암살작전의 표적이었던 알바그라디는, 트럼프 정부와 부시 중심의 공화당 세력 및 CIA 및 NSA가, 백악관 테러혐의 및 (9-11식의) 하이재킹+항공기 테러 혐의로 모함, 감시, 표적삼은 저를 중첩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 2014년 10월 당시, 고발준비에 주력하고 있던 본인은, 조선일보와 KBS 등의 주최 측이, 이 작품의 당선을 미끼로 “기득권들을 댓글들로 비판해서 노여움을 산 것에 대해서, 댓글 삭제하면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 당선시켜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시도했던 협상에, 일체 응하지 않은 바 있습니다. ​ 2015년 12월 말. 본인이, 세계일보의 세계문학상과, 이후 여러 장편소설 공모전 홍보 사이트 문학상에 응모했던 통일신라시대 배경의 장편소설 ;을 비롯한 여러 동서양 영화들 및 TV 시리즈들의 바탕이 된 바 있습니다. *** 본인은, 앞서 언급한 고발문 작성에 주력하던 과정에서, 2016년 봄에, 한겨레와 여러 좌파세력들이, 본인의 이 ;에 대한 한겨레 문학상의 수상을 제안하며 본인을 위로, 격려하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응모 거부로 일체 응하지 않은 바 있습니다. ***** 본인이 이렇게, 앞서 2건의 수상제안(회유, 호의- 한겨레)에 대해서, 일절 응하지 않았다는 “사실들”을 굳이 명시한 이유는, 한국 영화계와 방송계 및 법조계와 경찰 및 학계와 의학계와 정재계를 포함한 여러 국내외 기득권 세력들 및 이들에게 놀아나면서 본인을 계속 왜곡, 모함, 오판, 모욕해대는 미개한 한국인 군중이, 본인을 “박정권과 삼성과 영미국과 유태인으로부터 특혜를 얻어서, 능력이나 자질도 없이 초고속 출세를 하며, 공정성 문제로 만인을 분노하게 만드는 자”로 왜곡, 모함하며 수년째 줄곧 본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나아가, 본인의 고발을 방해, 왜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수년간, 고발문들과 반박문들과 댓글들 등으로, 만인이 보는 가운데 거듭거듭 강조하고 강조했듯이! ​ “본인은, 동서양 온 세계 여러 국가들과 세력들과 세계인들로부터 주목과 주시를 받는 가운데, (여러 축복들과 호평들과 도움들도 받고 있으되) 영미국과 국내외 정재계 등의 기득권들 및 이들의 하수인들인 의학계와 과학계 및 법조계와 수사기관들로부터 염탐과 절도와 연구의 대상으로서 구경거리와 표적사냥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들에게 여러 경로들로 빌붙은 본인의 지인들과 가족 및 친척들이나 (자신들이 앙심을 품은) 원수들이 아무렇게나 지껄여대는 수작들로 인해, 만인의 지탄을 받는 공공의 적이자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며, 이 때문에, 본인이 “(본인의 안위나 수익창출과 무관하게) 고발완성을 핵심목표로 삼아서 벌써 2016년부터 6년째 고발과 반박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014년 2월부터 2021년 11월 현재까지, ​“동서양 국내외 기득권들의 전천후 불법감시 및 테러범 관련 모함들과 절도사례들 및 저들의 살인 및 테러공작들에 대한 고발문 및 본인의 삶에 대한 왜곡들에 대한 반박문들”을 작성 중인 것입니다. ​​․ 그 외, 2001년 1월부터 2007년까지, 작가협회장이나 동료작가들이나 영화PD들의 추천 등을 통해, 크고 작은 한국의 영화사들 및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 교류하며, 계약진행 또는 계약 없이, 스토리들을 개발한 바 있습니다. ***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정식계약 집필을 포함해, 스토리와 시나리오들 20편 가량을 제작사들과 직접 만나서 집필, 완성하거나, 제안한 바 있으나, 영화개봉작품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이렇습니다. 애초에 영화사(기획시대)가 시나리오 개발만 하고서 제작은 안 하려고 했던 경우, 본인의 시나리오가 호평받았음에도 연출자 물색과 제작비 확보 및 제작을 완성할 엄두가 나지 않은 영화사들(기획시대, 별천지, 넬슨신)이 제작을 포기, 시나리오가 완성됐음에도 제작자(한석규 형제)들의 변심으로 영화화가 이뤄지지 않거나, 유명감독을 영입해서 연출을 맡김으로써 투자를 더 크게 확보해보려고 창작자인 본인(+시네마루 작가팀)을 축출했다가 졸작으로 나온 시나리오 때문에 투자가 끊어져 제작사 자체가 도산한 경우(;을 제작하려 했던, 디지털 드림 스튜디오의 경우!) 등등 때문입니다. 즉, 이 문제는, 본인의 능력부족 때문이 아닌것입니다. ​ 그러나, 이 문서에서 이미 명시했듯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과 일본 및 영미국의 영화들과 TV드라마들 및 방송 프로그램들이 본인의 인터넷 행적들과 창작물들을 바탕삼아서 많은 작품들(추격자, 황해, 추노, 아이리스, 프로메테우스 등등)을 만든 바 있고, 여러 이유들로 동서양의 여러 국가들과 세력들이 본인을 감시, 주시한 2014년 이후로는,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2014년부터 2021년 11월 현재까지, 한국은 물론, 영미국, 유럽, 러시아, 중남미, 중동, 동남아, 일본, 중국 등의 온 세계에서, 수백편의 영화들과 TV드라마들과 방송 프로그램들과 소설들이 본인의 인터넷 기록들과 ‘완성 및 미완성의 창작물들’ 및 (진위여부에 무관한) 본인의 삶과 고발문제(미국 공화당과 FBI와 인터폴 및 영국 지배층의 표적사냥 등)을 바탕으로 공모전 홍보 사이트 만들어져 세계 곳곳에서 많은 성공들을 거두거나 국위선양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창작활동과 별개로, 멀게는 2006년부터, 가깝게는 2014년부터, 한국을 포함한 동서양 온 세계의 (정, 재계에서의 성과들과는 별개로) 영화계와 방송계와 문학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 문피아에서 본래 제가 계획, 준비해왔던 웹소설을 연재해서, “세계인의 지지와 참여”를 통해서, 큰 규모의 수익창출을 하려는 것입니다. ----- 2021년 11월 17일에 작선한 내용들! ​ ----- 2023년 7월 17일에 발췌하여, 별도의 게시글로 이곳 본인의 블로그에 올린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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